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m Essay Jul 24. 2018

플라스틱

by 연도


태양의 강렬한 시선 때문에 잠에서 깼다. 오랫동안 받은 강렬한 시선 때문인지 온몸이 끈적거렸다. 불쾌한 기분으로 맞이하는 아침은 썩 좋지가 않았다. 찝찝함을 없애기 위해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방보다는 덜 습했다. 손잡이에 아무렇게나 감겨있는 샤워기를 틀었다. 찬물을 끼얹자 몸이 활어처럼 튀었다. 해마다 찬물에 샤워를 하는 것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샤워를 하고 나니 찝찝함도 씻겨 내려갔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티브이를 틀려고 리모컨을 찾는데 없었다. 소파 밑에 들어갔나 싶어 허리를 굽혀 소파 밑을 봤다. 소파 밑은 쓰레기장처럼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이 먼지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결국 리모컨 찾기를 포기하고 손가락으로 티브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뉴스가 나왔다. 항상 자고 일어나서 티브이를 틀면 뉴스 채널이었다. 아버지는 뉴스 말고는 보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았다. 뉴스는 몇십 년만의 열대야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밖에서 좀 오래 서있었다고 죽는다니 어이가 없었다. 털옷을 입고 사는 우리 집 강아지 핑크도 잘만 살아가는데 인간은 개보다도 못한 생명력을 가졌나 보다. 


점심을 시리얼로 가볍게 때우고 숙제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숙제를 매일 내줬다. 하루라도 안내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숙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하교 시간에 따로 남겼다. 이것만 해도 질색인데, 똑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쓰게 했다. 일명 ‘빽빽이’ ‘숙제를 꼭 하겠습니다.’ 혹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겠습니다.’ 이 말만 300번씩 쓰게 했다. 이 짓을 하고 있으면 지옥의 톱니바퀴 속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숙제를 안 해가는 놈들이 있었다. 나는 남아서 ‘빽빽이’를 하는 것보다 숙제하는 시간이 적게 듦을 알았다. 멍청한 놈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번 숙제는 영어 단어 쓰기라서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숙제를 끝내고 저녁을 먹을 궁리를 하던 참에 현관문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숙제는 했니? 저녁은 먹었고?”

  “방금 막 숙제 끝냈어요. 저녁은 아직.”

  “잘됐구나. 마침 치킨 사 왔다.”


아빠는 치킨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는 상을 펼쳤다. 상 위에 치킨을 올리고 포장을 뜯었다. 아빠는 금방 나왔다. 치킨이 내 위장의 문을 두드렸다. 내 위장은 그것을 반가이 맞이했다.


  “너 손은 씻었니?”

  “씻었어, 싱크대에서. 아빠 오늘 진짜 더웠지? 뉴스에선 몇십 년만의 더위래?”

  “해가 갈수록 더 더워져. 그러니까 재활용도 잘하고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나는 소파 밑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응, 근데 아빠 콜라 좀 더 줘.”


간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은 탓일까. 내 배에는 먹구름이 꼈다. 새벽에 화장실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일 학교에서 조퇴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아팠지만 조퇴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주위가 서서히 밝아질 즈음 자명종 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나는 갓 태어난 강아지마냥 눈도 못 뜬 채로 거실로 나왔다. 아빠는 출근하셨다. 배가 아프지 않아서 조퇴는 할 수 없을 듯했다. 아침을 거르지 말라는 아빠의 메모를 보고 없는 시간을 쪼개 아침을 먹었다. 메모장 밑에 끼어있는 천 원 두 장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이왕 주려면 화끈하게 오천 원을 주지. 아직 해가 강렬할 시간이 아닌데도 바깥의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오후에 체육시간이 있었다. 만약에 이런 날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다가는 뉴스에 나온 것처럼 누구 하나는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서서히 열이 오르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었다. 여기서 신발이 벗겨진다면 양말은 물론이고 발도 탈 것 같았다. 나는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교문 주위 횡단보도에는 아줌마들이 노란색 깃발을 들고서 있었다. 경찰 아저씨처럼 신호에 맞춰 아이들의 걸음을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교문으로 들어갔다. 교실에서 나는 소리가 1층까지 들렸다.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들, 아침부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큰소리로 얘기하는 아이들까지 원숭이들이 따로 없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교과서를 꺼내려고 서랍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찌르며 말을 걸었다. 


  “야, 대식아 나 지우개 좀 빌려주라.”

  “싫어, 너한테 지우개 빌려주면 맨날 더럽혀서 주잖아.”

  “야아, 같이 좀 쓰자. 깨끗하게 쓸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안 빌려줄 거거든.”

  “대박 치사한 놈. 니가 그러니까 니 엄마가 버리고 도망간 거야.”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냐?”

  “니 못난 그 심보 때문에 너희 엄마가 도망갔다고오.”


나는 가슴속에서 튀어나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병수한테 날렸다. 녀석은 넘어졌고, 코에는 피가 흘러내렸다. 뭔가 기분이 좋았다. 평소 깐죽대던 놈을 때려줘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웃음이 났다. ‘야, 선생님 왔다, 선생님!’ 병수의 눈에 고여 있던 것이 선생님이 들어오자 턱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한테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선생님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병수만 감싸고돌았다. 나는 책상 고리에 걸려 있는 가방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낯설게 쳐다봤다. 아침 조례가 끝나고 병수와 나는 교무실에 불려 갔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서로 화해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선생님 병수가…”

  “서로 화해하고 끝낼래? 부모님 모셔올래?”


우리는 교무실 문 앞에 나란히 앉아 반성문을 썼다. ‘빽빽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자주 싸움에 휘말렸다. 아니, 자주 걸어댔다. 반성문을 하도 많이 써서 이제는 10분이면 다 쓸 수 있었다. 그날도 교무실에 불려 갔다. 후딱 반성문을 쓰고 집에 가고 싶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을 찾으러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옆 반 선생님이 상담실로 가보라고 했다. 오늘은 좀 늦게 집에 가리라는 걸 직감했다.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 문고리를 돌렸다. 상담실에는 선생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나는 그 사람 옆에 앉았다. 선생님의 기나긴 설교를 듣는 동안 나는 고개를 한 번도 들지 못했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칠 것 같아서였다. 설교 시간이 오늘은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쪼록, 아버님 집에서 지도편달 잘 부탁드립니다.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그러니까 걱정이 되네요.”

  “네, 걱정 마십쇼. 제가 잘 타일러서 앞으로 그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대식아 너는 내일 아침부터 분리수거장 봉사해야 된다. 일찍 나오렴.”

  “네.”


아빠와 나는 말없이 잘 달구어진 아스팔트 도로를 걸었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아빠는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왔는지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뜨겁고 습한 바람에 아빠의 진한 땀 냄새가 날렸다. 아빠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대식아.”

  “응.”

  “이유는 묻지 않으마. 딱 한마디만 할게. 대식아 모든 걸 그렇게 힘으로 해결하다가는 네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거다. 친구도 심지어 아빠도 널 멀리할 수 있어.”

  “하지만 아빠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잖아.”

  “아니다, 아빠가 말실수를 했다. 그건 좋은 말이 아닌 것 같구나.”

  “응, 아빠, 미안해.”

  “괜찮아. 어깨 펴고 당당하게 걸어. 사내는 항상 자신감이 중요한 법이야.”

  “응…”


오늘 저녁은 간만에 아빠랑 먹었다. 아빠는 오므라이스를 해줬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요리 중 거의 유일하게 맛이 괜찮은 음식이었다. 케첩을 왕창 뿌리다가 아빠한테 핀잔을 들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책상에 앉았다. 선생님은 오늘도 어김없이 숙제를 내줬다. 오늘 숙제는 ‘엄마한테 편지 쓰기’였다. 공책을 펼쳤다가 도로 덮었다.


오늘은 자명종의 시끄러운 비명이 아니라 아빠의 손길이 나를 깨웠다. 아빠의 갑작스런 손길에 당황하긴 했으나 기분은 좋았다.


  “대식아, 오늘 교내봉사 때문에 일찍 가야 되지?”

  “응, 빨리 씻고 가야겠다.”

  “토스트 해놨으니까 먹고 가.”

  “응.”


아빠는 우유 한 잔을 빠르게 비우고는 나에게 당부했다.


  “토스트 꼭 먹고 가. 햄토스트야.”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이 조금은 작아 보였다. 나는 토스트를 천천히 씹었다. 소스가 너무 많아서 조금 짰다. 우유를 두 컵이나 비웠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니 바깥은 아직 푸르스름한 빛에 싸여있었다. 손을 뻗어 바람을 만져보았다. 약간 습했다.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머리에 물을 뿌렸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자 머리가 얼얼하고 띵했다. 반쯤은 감겨 있던 눈이 마저 뜨였다.


일찍 등교를 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남들보다 부지런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굳이 그렇게 부지런하고 싶지 않았다. 안 부지런하고 차라리 잠을 더 자고 싶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아줌마들이 없었다. 내가 아줌마들 보다 일찍 나오다니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나는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유유히 교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통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쓰레기봉투와 고무장갑, 집게를 주셨다. 나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왼손에는 집게, 오른손에는 쓰레기봉투를 집었다. 선생님은 분리수거장 정리, 운동장과 건물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주우라고 하셨다. 자기 눈에 쓰레기가 하나라도 보인다면 ‘빽빽이’를 시킨다고 했다. 오늘 하루가 참 길 것 같았다. 아침 조례 시간 전까지 교문 앞과 분리수거장을 다 치워야 했다. 그래야지만 점심시간에 놀 수 있었다. 쓰레기를 주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봉투가 반이나 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쓰레기를 참 많이 버리는 것 같다. 외국에는 쓰레기통이 거리마다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필요 없는 것들을 많이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것만 만들면 쓰레기도 없어질 것이니까. 어느덧 친구들이 하나 둘 등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줌마들의 통제에 착실하게 따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유독 촐랑거리며 걸어오는 애가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앞을 쳐다봤다. 병수는 억지미소를 보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여~ 대식이, 결국 쓰레기를 줍게 되는구나! 저기, 저~~기 쓰레기 있는데 안 줍냐?”

  “야,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교실로 들어가라 또 코피 터지기 전에.”

  “터뜨려 봐, 해봐. 교내봉사시간 늘리려고? 아? 평생 쓰레기나 줍게?”

  “뭐? 야 일로와. 이게 진짜!”


병수는 쥐새끼마냥 여기저기 피해 다녔다. 어울리지 않게 재빨랐다. 원치 않게 병수와 술래잡기를 하게 되었다. 땀이 범벅이 될 즈음 아침 조례 종소리가 울렸다.


결국 점심시간에도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아침에 교문을 치워서 다행이었다. 친구들은 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가 노는데 쓰레기나 줍는다니 한숨이 나왔다. 햇볕은 또 왜 이렇게 뜨거운지 인상을 구기며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분리수거장에 다다랐을 때, 악취가 내 코 속으로 전력질주했다. 내 코는 그걸 막지 못하고 처참히 뚫렸다. 여러 냄새가 섞여 오묘한 구린내가 났다. 다음으로 나를 맞이한 것은 파리 때였다. 유독 플라스틱을 모아 둔 곳에 응집되어있었다. 반쯤 부러진 플라스틱 빗자루를 주워 휘적거렸다. 파리들은 웅웅 소리를 내며 사방팔방으로 날뛰었다. 아마도 청소를 하다가 위장의 문을 개방해야 할지도 몰랐다. 


헌 교과서를 필두로 새 문제집도 더러 보였다. 쓸모 있는 것도 버려지는구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을지라도 다른 이에게는 쓸모가 없을 수도… 분리수거를 한창 하다가 문득 자연을 위해서는 분리수거를 꼭 해야 한다고 수업 시간마다 말씀하시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과연 선생님도 분리수거를 잘 하실지 의문이었다. 플라스틱들을 발로 마구 밟다가 플라스틱 통이 부서졌다.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붉은 물방울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대식아! 괜찮니? 많이 다쳤어?”

  “……”

  “잘 지냈어?”

  “누구세요?”

  “대식아, 엄마야. 엄마 잊어버렸어?”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4살  때 버리고 갔으면서, 아줌마가 정말 내 엄마라면 나타나지 말았어야죠. 뭐가 아쉬워서 찾아왔죠?”

  “대식아...”

  “내 이름 부르지도 마세요. 나도 엄마란 존재는 필요 없어요. 이제는 내가 버릴 거야.”


그 여자는 말없이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을 바라봤다. 그 주위에는 내 핏자국이 점점이 남아있었다.


하교시간이 될 때까지 지정된 구역을 청소하지 못했다. 막 곤두박질치던 내 기분은 ‘빽빽이’를 할 생각에 바닥까지 추락했다. 우려와는 달리 선생님은 별말씀 없이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몽쉘 2개를 쥐어주셨다. 단 걸 먹어서인지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몸에 쓰레기 냄새가 뱄다. 새삼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존경스러웠다. 으레 어른들은 그들을 보고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 하렴.’ 이런 식으로 비하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자연과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학시간에 자연은 자기 스스로를 정화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정화하기는커녕 더 더러워지고, 심지어는 자연까지 더럽힌다. 쓰레기를 버리고 누군가를 버리고 자기 자신을 버린다. 앞으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을 보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겠다. 하늘을 보니 해는 조만간 퇴근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몸에 찌든 쓰레기 냄새를 씻어냈다. 더웠지만 냄새를 없애기 위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화장실 문을 열자 갇혀있던 수증기들이 도망쳐 나왔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내 의식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나는 누군가의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분유 냄새가 옅게 났다. 방 안에는 아이와 여자가 있었다. 아이는 여자 옆에 앉아 블록을 갖고 놀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여자도 빙긋 웃었다. 여자는 살며시 일어서더니 방을 나갔다. 별안간 아이는 블록을 입에 가져다 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아이의 입에 물려있는 블록을 조심스레 자신의 손으로 옮겼다. 


  “아무거나 막 주워서 입에 넣으면 못써요! 대신 다른 걸 물려줄게.”


여자는 탁자 위에 있던 젖병을 두어 번 흔들고는 아이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때 어디선가 자명종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내 방에 누워 더듬거리며 자명종을 찾고 있었다.


어제와 같이 봉사를 했다. 분리수거장의 냄새와 파리들은 크게 껄끄럽지 않았다. 나는 교문을 청소할 때도 분리수거장을 청소할 때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늘은 시간 내에 구역을 모두 청소할 수 있었다. 방해꾼들이 없으니까 일이 수월했다.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다. 참 깔끔하게 했다며 몽쉘 4개를 주셨다. 그러나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교문을 나섰다. 도로 위의 아스팔트는 식을 기미가 없어 보였다. 집에 들어가 보니 현관에 신발이 있었다. 


  “대식이 왔구나. 오늘 아빠가 몸이 좋지 않아서 일찍 퇴근했다.”

  “응? 많이 아파? 어디가 아픈데?”

  “그냥 감기몸살이야. 아빠 이제 잘게. 밥은 식탁에 있으니까 꼭 먹고.”

  “응,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의 몸은 전기난로처럼 뜨거웠다. 주무시는 아빠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얹어주었다. 식탁에 앉아 밥상 가리개를 들어 올렸다. 밥을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았다. 그 열기 속에서 눈을 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집이었다. 거실에서 방으로 장소만 바뀌었다. 아이는 여전히 블록을 손에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옆에는 여자가 누워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이의 블록 장난을 구경했다. 이내 아이는 블록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방문 앞에 어떤 남자가 서있었다. 시야가 흐려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의 입에서 블록을 거칠게 빼냈다. 그러고는 누워있는 여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는 자명종의 비명보다 더 앙칼지고 기분 나빴다. 둘은 말다툼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과의 거리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말소리는 음량이 0인 티브이의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들으려 애쓰는데 무슨 소리가 미세하게 들리더니 이내 귀청을 때렸다.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떴다. 공간이 바뀌었다. 그들은 오간데 없고 자명종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빠의 러닝셔츠는 반쯤 젖어있었다. 아빠의 이마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마의 열기는 어제와 비슷한 듯했다. 선반 위의 책 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현관을 나섰다. 약국에 들어서자 쓰고 코를 뚫는 냄새가 진동했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약국 아저씨에게 감기몸살 약을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아이에게는 약을 팔지 않는다며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 나는 아빠가 아프셔서 못 온다고 상황을 설명했으나 그 멍청한 아저씨는 규정이 그렇다며 나가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열을 내며 나가려는데 약국 문에 달린 방울소리가 났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그 여자가 서있었다. 자칭 엄마라는. 여자는 앵무새 아저씨에게 약을 받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배고프지 않니?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갈까?”

  “아빠가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요.”

  “그러지 말고 가자. 감자튀김이랑 콜라도 사줄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입에 구겨 넣고 있었다. 치사하게 먹을 걸로 사람을 홀리다니. 그녀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밥은 잘 먹느냐, 누가 괴롭히지는 않냐, 아빠가 잘 해주냐, 여러 질문들은 결국 ‘미안해’로 끝났다. 그녀는 잠시만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아빠는 아직 누워있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아빠에게 그녀를 만난 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고 아빠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녀가 내 손에 쥐어준 약과 죽을 내밀었다. 아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것들을 삼켰다. 아주 천천히. 나는 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오물거렸다. 아빠는 한숨 더 잔다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을 뒤집어쓴 아빠는 큰 애벌레 같았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쏟아져 있던 물건들 속에서 알림장을 집었다. ‘숙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리고 이유는?’ 나는 공책에 연필을 끄적거렸다. 몇 번의 끄적거림이 지나고 나의 이마는 책상과 만났다. 장소가 바뀌었다. 나는 그 집 안방에 와있었다. 그 여자와 남자가 싸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저번과는 다르게 말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왜 고함을 지르고 난리야?”

  “당신 미쳤어? 애가 위험하게 블록을 입에 물고 있는데 태평하게 누워서 잠이나 자고 있어? 니가 그러고도 엄마야?”

  “그러면 당신은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애나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그들의 언성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불안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그들의 말소리는 점점 줄어들어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적막한 고요 속에서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남자의 발이 여자의 배를 향했고 여자는 웅크렸다. 그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들은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힘에 못 이겨 쓰러졌고 남자는 그제야 아이를 돌아보았다.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 마치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것처럼. 나는 책상에 이마를 붙인 채 엎드려 있었고, 내 눈에는 아이의 눈에 흐르는 것이 흐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사막에 무지개를 만들 수 있을거라 확신한 나의 그 시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