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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m Essay Jul 31. 2018

물고기

by Obstinate


"바다로 가면 난 큰 물고기가 될래."

"그게 무슨 소리야?"

"헤엄치고 싶어, 멀리 멀리."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왜 또 저래,라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극히 드문 확률로 내 말을 이해해줬겠지.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물고기는 자기 부모를 기억 못하잖아. 다 크면 그냥 떠나잖아, 그리고 신체 구조상 움직이면서 뒤를 볼 수 없어. 내 아비도 그렇게 떠났을까? 큰 물고기여서, 앵알앵알 우는 내가 뒤에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럼 난 물고기랑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거네? 근데 난 수영을 못해. 물이 무섭거든. 밑이 안보이잖어. 그럼 난 뭐지?

넌 기억나, 그때? 아니. 어떻게 기억해, 난 이제 처음으로 사계절을 겪었는데. 처음 겪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뜬 눈으로 그걸 다 담아내기엔 내가 너무 작았어.

"미안, 내가 또 이상한 소릴 했네. 술 먹으러 갈까? 나 이쪽에 맛있는 데 알아."

"그래."

"여기 석화가 싸, 소주랑 먹자."

"석화 먹기 힘들어, 그냥 회 먹자."

"그래, 그러자."

"아저씨, 여기 광어 대자 하나랑 소주 오리지날 하나랑 참이슬도 하나주세요."

"그거 맛있어?"

아니, 맛없지. 술이 맛있어서 먹는다는 말은 정말 잘 만든 거 같아. 그 말 때문에 진짜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잖아. 그냥 미지근한 술을 먹기 싫어서 그래. 미지근하면, 적당히 또 가라앉는단 말야. 옛날 생각이 난다구.

"응, 맛있어. 먹을래?"

"윽 아니."

헤엄치던 아비는 어디까지 갔을까? 다시 뭍으로 올라와서 또 사람과 사랑을 나눴을까? 아니면 이렇게 코가 꿰여서 도마 위에 올랐을까? 뭐든 둘 다 뭍으로 올라왔을 테니, 숨이 조금이라도 막혔으면 좋겠다. 막혀서 죽을 뻔했을 때 뭐라도 생각나게.

"회 뜨는 법을 배우고 싶어."

"왜?"

"그냥, 배우면 재밌을 거 같고"

반이 물고기라서 비린내 나는 날 거둔, 새아비가 가르쳐준 투망을 던져서 혹여나 물고기 아비를 잡으면 해보게. 뭘 물어보며 칼질을 하면 너무 싸이코패스 같을까? 근데 나 정말 궁금해, 진짜 물고기라서 뒤를 못 본 건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이거 먹으면 입에서 비린내 나?"

"음, 그냥 여기가 비린내 나지 않아?"

"엥? 여기 비린내 나?"

"응, 안나?"

"응 안나."

"너 바닷가사람이라 그런가봐."

바닷가사람은 그럼 비린내 나? 난 내가 반이 물고기라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럼 내가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네? 그럼 나 잊을래, 내가 물고기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잊고 싶어.

"나 좀 더 쎈 술 먹고 싶어."

"또 고량주?"

"응, 그럼 기름 냄새나는 곳으로 가자. 맛있는 데 알아."

내 새아비는 어릴적 뻐금거림은 못 봤지만, 술 먹을 나이가 될 때 너무 많이 먹고 허공에 뻐끔거리는 건 봤어. 투망만큼 무거운 날 업고 별장에서 깰 때까지 옆에서 자줬어. 새아비가 나하고 술 먹는 걸 좋아하는 건 내가 뻐끔거리는 걸 볼 수 있어선가 봐. 그래서 나 더 술 먹을래. 더 쎈 걸로, 미지근하지 않은 걸로, 옛 생각도 안 나고 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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