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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연극배우 B씨
Dec 18. 2021
(1)엄마 이제 조금 쉬어도 될까?
이혼 후 이야기 #. 61
새벽 3:58분
익숙한 시간 알람이 울렸다.
실눈을 뜬 채 핸드폰 화면을 한쪽으로 밀어 알람을 껐다.
덩그러니
몸을 누인
내 방이 다시 고요해졌다.
몇 분간 고민하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양치를 하고 아직 껌뻑거리는 눈에 물을 묻히고
거울을 쳐다봤다.
'잘했어. 어서 운동복 입고 나가야 해.'
건조대에 어제 새벽에 널어둔 푸석거리는 운동복을 집어 들었다.
발등을 넣
기 힘들 정도로 꽉 조여진 운동화에 발을 욱여넣었다.
쉬지 않고 뛰려면 이 정도로 꽉 매어져있어야 한다.
찬 공기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운동화를 신고 마주하는
새벽 4시 20분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너무 깜깜하다.
타임스위치를 맞추느라 몇 걸음 걸으면서
이어폰을 귀에 더 바짝 밀착시킨다.
정신없이 빠른 템포의 음악을 켠다.
빠른 음악이라야 새벽의 그 거인 같은 어둠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무서움을 음악으로
애써 누르면
서
나는 달리
기 시작한다.
미처 잠에서 깨지 못한 발바닥이
무릎이
그리고 찬바람을 마주하는 내 얼굴이
차가운
새벽 기온에
뒤늦게
헐레벌떡 깨어난다.
한 시간 가량 6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정신없이 뛴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집에 돌아오면 5시 30분.
씻고 아침밥을 간단하게 차리면서 아이들을 깨우고
출근 준비를 한다.
달랑거리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며
현관밖에 있는 신문을 집어 든다.
직장에서 점심시간 졸음 대신 꼼꼼하게 읽어야 할 매일의 숙제이다.
일하다가 시간을 잠깐 내어
어제 책을 읽다 메모해둔 서적을 주문한다.
주말에 들을 온라인 강의도 결재한다.
퇴근해서는 저녁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책상에 앉는다.
낮에 바빠서 읽지 못한
책과
온라인 강의를 펼친다.
이내 졸음이 쏟아진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과에서 쌓인 피로가 조금씩 내 눈꺼풀을 끌어내린다.
"엄마, 침대에서 자. 불
꺼줄게."
"아냐 아냐, 엄마 안자. 잠깐 졸은 거야."
화들짝 놀란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한심해진다.
이런 내가 한심해진다.
더 정신 차려서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잠이 들다니.
바보 같다.
오늘은 신문도 큰 제목만 대충 읽은 것이 생각났다.
경제
는 이해도 못하면서 그렇게 대충 읽다니.
화가 난다.
나 자신이
바보 같다.
"엄마. 카페에 있지? 언제 와?"
주말에는 똑같이 새벽 운동을 하고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카페로 가서
1등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이 늦잠에서 깨
는
정
오
나
때로는 저녁 먹을 시간까지
카페 구석자리에서
못다 읽은
책을 읽고 부동산 공부를 하고 온라인 강의를
듣는
다.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늘 주문을 외운다.
나는 빠듯한 월급쟁이로만 살진 않을 거야
아이들이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고
늙어서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엄마가 돼야 해
여린 꽃잎 같던 아이들을 힘겹게 키워내던
막막했던 시간들이 어느 정도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과제가 나를 재촉했다.
-내가 아프면 아이들을 보살필 사람이 없어. 그리고 공부를 하려면 체력이 돼야지. 그러니까 운동을 매일 해야 해-
몸이 아파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새벽마다 뛰었다.
피곤해도 책을 들고 다니고
소화를 하든 못하든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퇴근 후 책상에 앉아 그날 공부한 것을 요약을 하고
다시 읽고
휴가를 내서 현장을, 낯선 동네를 하루 종일 걸었다.
30km를 걸으며 저녁엔 발바닥에 잡힌 물집을 짜냈다.
그렇게 발바닥으로 직접 다녔어도 감을 잡을 수 없는 내 무능력에
잠시
쉬는 것도 사치 같았다.
몇 번을 발품을 팔고
지방에 있는 아파트를 사고
전세를 좋은 가격에 놓아 투입 비용을 줄이려고 애를 썼다.
중개수수료와 등기비로 목돈들이 나갔다.
저축해 둔 돈과 비상금을 이리저리 재배치하고 급할 땐 보험대출도 받았다.
상의할 곳이 없었다.
온라인 강의로 배운 것과 책에서 얻은 지식, 하루 종일 걷기만 한 어설픈 현장감각을 최대한 상기했다.
휴가를 낼 수 없을 땐 계약을 위해 인감증명서와 위임장을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겁도 났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밤새 고민했다.
잔금을 입금하는데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이런 결정 하나하나에 그동안 내가 공들인 시간들이 증명되어야 한다.
불안할수록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무슨
내용이 강의이든
듣지 않으면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았다.
휴일에 늦잠을 잘 수 없었다.
내
가 쉬고 있는 시간에 다른 엄마들은, 다른 직장인들은 공부하고 있을 것 같았다.
빡빡한 환경에 나를 묶어놓고 매일 같이 독촉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책상에 쌓여있는 책들 중에 두
권을 출근 가방에 욱여넣었다.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귀로는 부동산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근하는 길이었다.
신호대기로 잠시 차를 멈췄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꽃나무가 보였다.
위태해 보였다.
저러다가 부러지지 않을까...
혼자 꾸역꾸역 바람을 맞고 있었다.
옆에서 막아주는 큰 나무도 없고 혼자 버티는 그 가지가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혼자였다.
내일 저 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슬픈 마음이 들었다.
신호가 바뀌고 운전을 계속했다.
직원식당을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까워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일하는 책상에서 대충 먹은 뒤 신문을 폈다.
앉아있으면 졸릴까 봐 서서 읽기 시작했다.
신문을 다 보면 이어서 읽어야 하는 책이 보였다.
굳은 어깨가 뻐근해져 왔다.
눈이 일순간 침침하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신문을 읽고 책을 펴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머리가 아팠다.
서쪽하늘에 펼쳐진 노을을 보며 퇴근길을 재촉했다.
오늘은 온라인으로 신청한 중요한 부동산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빨리 집안일을 마쳐놓고 노트북을 접속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를 달릴수록 멀어지는 것 같은 노을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펑펑 났다.
슬픈 음악을 들은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눈물이 쏟아졌다.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온라인 강의가 생각났다.
허겁지겁
코를 풀고
다시 차를 몰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마치 펀치를 맞은 것처럼 머리와 가슴에 쿵 떨어졌다.
다시 또
토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마음이 우는 것인지
몸이 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조바심과 다그침에
머리끄덩이를 잡히듯
멱살을 잡히듯
질질 끌려온 몸과 마음이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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