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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둥지에서

이혼 후 이야기 #. 81

by 연극배우 B씨



큰 아이가 대학을 마쳤다.

대학 졸업 전에 면접을 보러 다니더니 직장을 잡았다.

그리고 자취를 시작으로 집을 떠났다.



월세계약서를 쓰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색한 차림으로 회사에 출근한 아이를 대신해

짐을 옮겨서 정리하고

이불 빨래를 다시 해놓고

원룸에서 나왔다.


아이의 냄새가 묻어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나왔다.



나와 한 몸인 익숙한 어금니가

'툭'하고 빠지는 것 같았다.

다시 나지 않을 영구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원룸을 나서는데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두 살 터울인 둘째도 곧 대학교에 들어갔다.

역시 집과는 먼 학교라 기숙사에 들어갔다.


둘째 아이 짐도 옮겨주었다.

생필품을 같이 사고 기숙사 근처에서 밥을 사 먹이고 들여보냈다.

힘들던 고3입시를 벗어난 아이는

설레는 듯 한껏 부풀어 있었지만

내 마음은 미세한 구멍이 난 풍선처럼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었다.


둥지에서 장난치고 놀던

두 마리 새가

그렇게 훌쩍


둥지밖으로 날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1인분짜리 냉동밥을 꺼내고 김치와 조미김을 익숙하게 뜯고 있는 내가 있었다.


'숟가락도 귀찮다, 설거지만 늘어나지...'


젓가락만 달랑 쥐고 있었다.

텅 빈 식탁, 혼자뿐인 조용한 집안에서 말이다.



그렇다.

정말로 나는 1인 가정이 되었다.



이제 과일을 깎아서 냉장고에 종류별로 쟁여둘 필요도 없고 함께 돈가스를 먹으러 갈 일도, 치킨을 시켜 식탁에 분주하게 세팅할 일도 없게 되었다.


속옷코너에게 키득거리며 함께 아이들 속옷을 골라줄 일도 카페에서 1인 1 케이크이냐며 타박할 일도 없게 되었다.


냉장고에는 아이들이 먹다만 간식이 유통기한이 지난 채 놓여있었고 하나 둘 버리다 보니 난 먹지도 않는 머스터드소스, 케첩이 멀뚱하게 남았다.





아이들이 여덟 살, 여섯 살 때.

서른 초반이었던 나는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회사 담벼락과 마주 보게 차를 세워놓고 창문을 다시 한번 꽉 닫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핸들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였으나 나는 비정규직이었고 남자밖에 없는 곳에서 유일한 여직원이었던 나는 하루하루가 숙제였다.


그 삭막하고 거친 곳에서 힘들지 않은 척하며 하루 종일 버텨야 했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명치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멀미 같은 내 감정은 일단 보류였다.



쿵하고 운전석 문을 닫아 외부와 문짝하나만큼이라도 단절되는 순간이 유일하게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이었다.


울고 싶었던 내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미만.

그 이상은 시간을 쓸 수 없었다.


퇴근길 장을 봐서 아이들 저녁을 해주러 얼른 가야 했기 때문이다.

숙제를 봐주고, 양치를 도와주고, 알림장을 챙기고 쌓여 있는 집안일 하기에도 저녁시간은 늘 빠듯했다.



구석진 회사 담벼락 앞에서 15분 동안 짧고 굵게 울었다.

울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침을 닦을 수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울었다.


보이지도 않는 내 미래

아직 너무 어린 빛나는 내 아이들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내쳐질 이 직장

하루 종일 이를 악물었던 나였지만 그렇게라도 울지 않으면 가슴이 정말이지 터져나갈 것 같은 시간이었다.








“엄마아! 엄마아!”


숨 쉬는 것보다 '엄마'라는 단어를 더 많이 뱉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나가고 나니 집은 대저택이 되었다.

너무 커졌다.


적막함을 지워보고자 TV를 켰다.

TV앞에 앉을 일이 없었던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하루종일 종알거리는 건 뉴스밖에 없지.’

뉴스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스터디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있어도 언제 올 거냐는 아이들 전화가 없다.


“엄마도 좀 혼자 있어보자! 그냥 너네끼리 밥 먹으면 안 되냐, 맨날 엄마 찾는 게 일이다 일.”


타박을 하며 못 이긴 듯 현관에 들어서야 제맛인데 전화기는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 있을 땐 마법의 나라 같았다.


엊그제 분리수거를 했는데 돌아서면 한가득 차 있고, 어제도 분명 세탁기를 돌렸는데 오늘 보면 그만큼의 빨래가 또 생겼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샴푸가 금방 동이 나고 화장실 휴지는 곶감 빼먹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이제 나 혼자 있는 집에서는 2주가 지나도 분리수거를 할 일이 없다.


빨래도 나 혼자 일주일을 열심히 갈아입어야 겨우 한번 돌릴 양이다.


밥은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니 한 번에 해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어쩌다 시킨 분식은 배달되자마자 절반 이상이 냉장고로 들어갔다.


치킨 닭다리도 다 내 차지였다.

아이들이 먹을 땐 참 맛있어 보였는데 닭다리가 이렇게 밍밍한 맛이었던가 싶다.



주인이 없는 아이들 방 앞에 섰다.

안에는 아무도 없지만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옷장을 열었다.

걸려있는 옷을 아이가 입었을 때 나눴던 대화, 장소가 떠올랐다.


‘분리수거 감’이라고 잔소리했던 아이의 물건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정리하려다 오늘 저녁에 집에 올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언제 애들 다 키우지?



빨리 나이 들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살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늙어진 만큼 어떻게든 아이들은 커 있을 테니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고 울고 싶던 이 시간들이 어서 지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빨리 늙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 아이들이 엄마가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는 것.

내 소원은 그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적어도 천근만근 무겁던 이 하루하루가 두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아이들은 착하게 자라줬고

겁쟁이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듯 콩나물처럼 쑥쑥 컸다.



그러고는 둥지를 떠난 것인데

나는 아이들이 날아간 둥지밖을 부지런히 살피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이 아쉬운 것일까.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내 품에 감싸고

내 눈에 넣어

비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것.

앞가림할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내 손으로 붙잡아 주는 것.

열 살도 안됬던 아이들을 일단 성인까지는 키워놓는 것


이제 겨우 그것만 해냈을 뿐이다.



아이들의 빈자리는

이제 내 시간과 독백으로 차곡차곡 채워나가야 한다.



미안하고 아쉬운 것은

이렇게 빨리 비어버릴 둥지인 것을 알았다면


더 많이 눈을 맞추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함께 있을 걸...

후회란 놈은 꼭 이렇게 마지막에 가서야

짠 하고 나타난단 말이지.




그래도 엄마가 씩씩하게 여기에 있으마.

힘들면

배고프면

졸리면

언제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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