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2020년 4월호 기고
일전의 기고글을 올려본다.
태국 치앙마이로 혼자 여행가서 쓴 글이었다.
B.C., Before Corona19. 코로나 직전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
여행의 블랙홀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하고 본인 인증을... 하려면 다시 돌아가서 인증 앱을 깔고, 로그인을 하려는데 비밀번호 오류가 나고, 이 번호도 아니고 저 번호도 아니면... 다시 인터넷으로 돌아가서 더 쉬운 방법은 없는지 검색을 하고...
허리를 폈다. 목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다. 해외 여행을 가기 위해 길러야할 첫 번째 덕목은 아무래도 휴대폰 화면에 집중해서 필요한 것들을 뽑아내는 일이다. 하긴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인터넷이 느리던 시절엔 컴퓨터 화면에 매달려 각종 교통편과 숙소 예매에 훨씬 더 골머리를 썩었다. 사전에 할 일들을 휴대폰 하나로 간소화 한 셈이니 이건 멋진 신세계에 가깝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건 여행을 갈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맡기려다 셀프여서 당황하기도 하고, 로밍에서 포켓 와이파이로, 그리고 유심으로 바뀔 때마다 조마조마해 한다. 우버나 그랩 앱을 언제 깔고 어떻게 인증하라는 거야. 물론 재미라면 재미지만, 나름 여행을 좋아하고 그럭저럭 꽤 많이 혼자서, 그리고 친구와 가족과 다닌 것에 비해, 갈 때마다 여행 생초보가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정도 다녔으면 길지 않은 해외 여행쯤은 숨 쉬듯 편안하고 우아하게 다녀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늘 새로 알아야 할 것들이 우르르 쏟아져 조신해진다.
문제는 편안하고 우아하게 여행을 계획해서 다녀올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세상은 금세 서로를 연결하고 옮겨 다니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낼 것이고, 난 또 초보가 되어 그 방식을 속성으로 익히려 노력할 것이다. 언젠간 나도 ‘여행 고수’가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인터넷에서 고수님들의 후기를 찾아 읽고 더듬더듬 따라 하기 바쁘다. 영원히 고수는 못 될 것 같다.
그나마 좀 좋아진 건 여행에서 야심을 좀 내려놓았다는 점이다. 내 영혼을 마주하고 자유인이 되어 득도하고 돌아오겠다는 거창한 야망 따위는 이제 없다는 말이다. 아니 누가 그런 야망을 품냐고? 난 솔직히 품었다. 아니, 반대로 누가 그 정도의 기대도 없이 여행을 떠나겠는가. 낯선 환경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를 새롭게 자각하고, 자국에서라면 이래저래 자신을 구속했을 여러 연락에 쿨하게 반응하며 자유를 느끼고, 이것 저것 보고 돌아다니다 보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아, 쓰다 보니 아직도 그 야망을 못 버렸구나.
사실 그 생각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야망에 들 떠 내달리기만 하던 때가 좀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정해진 규격에 따른다는 이유로 패키지 여행을 경멸하고, 배낭 하나 들쳐 메고 역사에서 잠을 청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나서는 이른바 ‘방랑 여행’의 신비와 낭만에 경도됐던 때. 나 자신만의 여행을 다녀와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코스에 남들 잘 안가는 곳을 넣기 위해 메인 스팟을 하나 빼야하나 고민하던 때. 아니, 그런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과 만난 사람들이 싫었던 건 아니다. 대체로 다 좋았다. 부끄러운 건,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여행 책을 바탕으로 교통편과 숙소를 동선에 맞춰 예약한 것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삶의 어마어마한 변곡점을 만나고 오고야 말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내 자신이다. 결국은 내가 한 일도 일종의 ‘패키지 여행’인 것을 뭘 그리 마음 속으로 뻐겼을까.
기대를 하고 맞이하면 삶의 변곡점이 안 된다. 교통편과 숙소가 펑크날까봐 전전긍긍하며 ‘적게 쓰는 돈’과 ‘넓은 동선’에 집착하다가 정작 여행지의 매력을 놓칠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예약되고 확보된 패키지에서 정말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될 수도 있다. 내가 갈 모든 곳이 ‘영혼의 장소‘가 되길 바라는 과도한 기대는 오히려 여행의 감동을 떨어뜨렸다. 지금은, 여행 선배들이 좋다고 한 곳들을 서툰 대로 모아보고 조심스럽게 나도 한 발짝 내딛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닌다. 그리고 그 때 그 때의 작지만 신선한 즐거움에 집중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행에서 원했던 것은 다시 초보의 마음을 누리는 것이었나 보다. 예전엔 고수인양 하고 싶었던 거다. 여행에서조차 얼른 고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여행 고수는, 남들과는 다르게 사진이 아니라 성장한 영혼을 남기는 거지! 이런 아집으론 원하는 바와 멀어질 뿐인데. 그리고 어차피 사진은 많이 찍었다. 엄청. 필름카메라도 아니니까.
여행에서의 난 당연히 관광객이자 무력한 초보자라는 걸 받아들이니, 최초에 품었던 야심과 비슷한 걸 오히려 느낄 수 있다. 낯설구나. 새롭구나. 그 안에 있는 내가 집에서보단 무력하지만 그게 재미있구나. 다시 초보가 되는 경험이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면, 여행이야말로 고수가 아니어야 진짜 고수가 될 수 있는 분야일 것이다. 목표를 성취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환기하고 오는 일. 여행은 ‘잘‘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초심자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품고 ‘그냥’ 다녀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잘’ 다녀왔다는 걸 이후에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여전히 여행에 서툰 자신을 정당화시키곤, 다시 휴대폰 화면 속 숙소 어플을 스크롤하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변화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2019.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