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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r 16. 2019

아따까마의 여유로운 날

칠레_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지금도 좋지만 더 좋아질 것이다. 


늘 그렇듯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 첫날은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며 분위기를 파악하고 낯선 것들에 대한 적응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러한 시간을 칠레(아따까마)에 와서는 두 번째 날이 되어서야 가질 수 있었다. 숨 돌릴 틈 없이 허겁지겁 달의 계곡을 갔다 온 덕이다. 사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적응이란 것은 적어도 남미 여행에 있어서는 필요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의 나라들은 같은 문화권에다 쓰는 언어까지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환전하는 일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미 달의 계곡을 갔다 왔다는 것은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방학숙제를 다 끝내버리고 남은 기간 맘 편히 놀 수 있는 것처럼 부담 없이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줬다. 어떻게 가야 할지, 어느 투어를 선택할지 알아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없이 완전히 자유로웠다. 그런 여유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날씨도 좋았다. 덥지 않은 가운데 적당한 햇빛은 그냥 있어도 평화로웠다.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데 있어 날씨는 기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악천후에 대비한 준비물 없이 가벼운 몸만 이끌고 산책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은 홀가분한 몸만큼이나 기분까지 상쾌하다. 라파즈의 음산한 기운과 대기오염, 우유니와 투어에서까지 이어진 추위에서 벗어나 맑은 하늘과 적당한 기온을 맞이한 나의 몸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느꼈다.


아따까마 공원 주변은 언제나 분주했다. 주변에 대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곳을 찾기 위한 교통편도 매우 불편하다. 그럼에도 칠레 가장자리의 작은 마을을 찾아온 수많은 여행객들이 나처럼 평화로운 날씨를 누렸다. 또는, 아따까마에 있는 여러 투어들을 즐기고 그것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다니고 있었다. 그런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사와 숙소와 식당들도 건강하게 느껴지는 활기참 속에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중심부를 벗어나자 인기척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한가했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을 위한 가게인 곳으로 보이는 곳은 주인이 없다. 문은 열려 있지만 지루하게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아닐 테지.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면 저 가게도, 가게의 주인도 분주해지지 않을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해보았다.


아따까마를 크게 돌아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어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던 길이 보였다. 그리고 미처 알아채지 못한 작은 강을 발견했다. 얕은 수심의 물이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비가 오는 소리와 같이 물이 흐르는 소리도 가만히 듣고 있기에 좋은 소리다. 길에서 조금 멀어져 강둑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고 들었다. 방해할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즐기기 안성맞춤이었다. 멀리 다리에서는 어제의 나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아마 달의 계곡을 가는 거겠지. 부디 별문제 없이 안전하게 다녀오길 빌어봤다. 


미리 일정을 정해둔 것이 아니라면 며칠 더 머물러도 좋았겠다. 그러나 좋은 것은 늘 짧게 느껴지는 것이기에 더 머물렀어도 아까웠을 거라며 애써 아쉬움을 달랬다. 이미 예매해둔 티켓을 버릴 수도 없고 아마도 더 좋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기대를 만들어 냈다. 더 좋을 것이다. 이어지는 나의 여행은.


별 투어 전문 여행사. 사실 이 투어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하긴 했다.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시골 그 자체
이제 막 마을을 벗어난 곳, 달의 계곡을 향한 자전거가 줄을 잇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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