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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r 13. 2019

달의 계곡, 마치 달까지 자전거 타고 간 것처럼

칠레_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에 도착하자마자 달의 계곡을 가게 됐다. 그것도 자전거로.


아따까마의 버스 터미널에 내려 점찍어둔 호스텔을 찾아 1km가량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갔다. 걷는 것이 힘들어 가는 길에 있는 숙소 몇 군데를 들러보았지만 가격과 퀄리티 면에서 마음에 둔 곳을 이기기 어려웠다. 힘들게 도착한 곳엔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잠깐 쉬는 도중 스탶의 추가 설명을 들으러 리셉션에 갔을 때 그들을 보고 말았다.


우유니 데이투어를 함께 하며 기대에 부풀었던 투어를 더욱 알차고 재밌게 만들어준 J와 그의 친구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호스텔에 머물렀고 자전거를 이용해 달의 계곡으로 떠나려던 차였다. 그들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다. 조금 피곤하더라도 우유니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재현할 수 있는, 그들과 함께 할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따라 나갔다. 근처의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를 빌려 달의 계곡이라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라면 자신 있었다. 예전에 강릉에서 부산까지 440km를 경사 심한 7번 국도를 따라 일주한 적도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달의 계곡까지 15km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아따까마 중심부를 벗어나 넓은 사막지대를 향해 뻗은 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렸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에 기분이 상쾌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렬을 지어 달리다 보니 자전거 동호회 또는 무리를 지어 자전거 투어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30여 분 만에 여행 안내소에 도착해서 티켓팅을 하고 미리 화장실도 가고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글자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자전거 투어링을 하기에 참 좋은 날씨다. @달의 계곡 여행 안내소
Valle de la Luna

다시 15분 정도 이동, 처음 둘러볼 곳은 소금기 섞인 협곡 동굴(Caverna de Sal)이다. 아따까마 사막 변두리에 위치한 달의 계곡은 우유니와 그 생성 원리가 비슷한데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소금이 되어 남아 있는 곳이 많고 여기도 마찬가지다. 동굴은 매우 좁고 낮으며 경사가 있어서 마치 자연 탐험하는 모험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동굴 입구(어디에???)

더 멋진 장면을 위해 다시 자전거 페달을 달리기 5분, 오른쪽 허벅지에서 쥐가 났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비포장 오르막길 앞에서 신난 기분에 무작정 페달을 밟던 다리에 무리가 생긴 것이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전거에서 힘겹게 내리자 어린 친구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잠시 쉬면 괜찮을 거라고 말했고 그들은 기다렸고 다시 출발했을 때, 얼마 가지 못해 또 쥐가 났다. 나 때문에 그들의 시간을 지체하게 만들 수 없었다.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날씨 좋고 풍경 좋고 다 좋은데 내 다리만 안 좋다

이미 너무 늙어버렸나 자책하는 사이 나를 위로해 줄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 추위와 비포장의 불편함을 뚫고 2박 3일 동안 작은 차 안에 담겨 이곳에 왔다. 더구나 마지막 날은 새벽 4시에 일정을 시작했다. 아침은 간단한 빵이었고 점심은 먹은 기억이 없다. 좋았던 체력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강릉-부산의 패기 역시 15년 전의 먼 일이다. 그래도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잠시 쉬고 출발했으나 이어지는 오르막길에서 다시 쥐가 났다. 쉬고 나서 자전거를 타니 또 쥐가 났다.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어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리고 끌고 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언제 가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달의 계곡 입구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석양이 아름답다는 얘기에 달의 계곡은 잠시 제쳐두고 세 마리아 상까지 갔다. 다행히 이 구간은 평지와 내리막길의 조합이다. 자갈이 많이 섞여 있어 운전이 불편하긴 했지만 쥐가 나진 않았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특별하다고 광고하는 세 마리아 상 앞에서 간식으로 사 간 바나나를 까먹고 달의 계곡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조금 전에 안도하는 마음을 갖게 했던 내리막길이 이제는 오르막길이 되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 위협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왼쪽 종아리에도 쥐가 난 것이다. 오른발의 힘을 빼고 왼발에만 힘을 주던 페달질도 어렵게 됐다. 또 자전거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지체 없이 어린 친구들을 먼저 보냈다. 

세 마리아 상. 왼쪽의 하나를 중국인인지 영국인인지 누군가가 부러뜨려버렸다고

올 때 빨리 왔었던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오르막길은 길게도 이어져 있다. 비록 완만하기는 해도 이미 쥐가 두어 번씩 난 두 다리가 견디기에는 힘든 경사였다. 버리고 싶은 자전거는 내 것이 아니라 버릴 수도 없었다. 옆을 지나가는 차들을 피해주는 일도 잦았다. 달의 계곡 투어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을 실은 버스들도 계속 지나갔다. 그 버스를 잡아 탈 수는 없을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버스들은 손 흔들 새도 없이 지나쳐 갔고 기대는 것인지 끄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전거와 함께 달의 계곡 아래까지 갔다.


올라갈까, 말까. 짧은 시간 동안 수천 번은 생각한 것 같다. 이미 조금만 힘을 주면 쥐가 나는 두 다리. 얼마나 멀리, 높이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목적지. 겨우 간다 한들 제대로 볼 수나 있을지 산등성이에 간당간당 걸려 있는 태양. 무사히 갔다 온다 한들 다시 아따까마 마을까지 되돌아가야 하는 거리. 이대로 멈추길 종용하는 조건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어느새 나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고 많은 사람들이 먼저 올라간 길을 뒤늦게 따라 올라갔다. 무거운 두발을 이끌고 미끄러지는 모래 언덕을 힘들게 올라갔다. 여기가 아닌가 보다. 내가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왔던 길들이 보인다. 높이 올라와서 보니 전경이 멋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 두 눈은 반대쪽 언덕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그곳까지 또 가야 한다. 그나마 자전거와 함께 있지 않으니 조금 낫다고 생각하며 움직였다. 

여기가 아닌가벼. 자전거와 사투를 벌이던 길이 보인다. 하얀 것들은 다 소금.

뒤늦게 그곳에서 다시 만난 J는 이미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충분히 많은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사진을 부탁하며 잠시 동안 붙잡았다. 그러나 곧, 힘들게 도착해 5분도 채 못 있었지만 나도 J를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반납해야 하는 시간도 촉박해진 것이다. 과연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의도치 않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돌아가는 시간과 다리, 걱정은 많이 되었지만 달의 계곡 얘기도 해야겠다. 달의 계곡이라 불릴 만했다. 누군가의 얘기처럼 인간의 달착륙 음모론의 배경이 될 만하기도. 우유니에서도 느꼈지만 자연은 대단한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는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것들을 인간은 대단하다며 감탄하고 바라본다.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시선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하물며 그 많은 인간들 중 하나인 나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달의 계곡. 역시 사진은 1/100만 표현해준다. (사실 사진을 잘 못 찍어서...)

감탄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다리를 이끌고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고통과 사투를 하며 자전거를 이끌고 있었다. 이미 해는 지고 사방은 어둡다. 언제 건전지가 떨어질지 모를 플래시에 의지해 앞을 가늠하고 제발 내가 가는 방향이 마을로 가는 길이길 기도하며 페달을 돌렸다. 기어와 속도를 잘 조절하면서 왔는지 다행히 돌아오는 길엔 쥐가 나지 않았고 겨우 4분 전에 자전거의 반납을 완료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이끌고 걸어가던 시간을 생각하면 초인적이다. 인간 역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겨우 호스텔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갈 기운도 없다. 그런 나를 위해 J가 라면 하나를 줬고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군대에서나 먹었던 뽀글이를 해 먹었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기절했다.


아따까마 사막의 한 켠, 달의 계곡. 충분히 멋있었겠지만 다른 감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에 보면서 느꼈던 인상과 감상이 희미해져 간다. 사진은 못 살리니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다시 가봐야겠네.


다시 가면, 저 위의 저 사람들처럼 넉넉한 시간까지 넉넉한 여유를 가져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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