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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Apr 03. 2019

남미의 땅끝,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_우수아이아

남쪽으로 갈수록 따뜻해져야 할 것 같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추워졌다. 남반구라서 그렇다. 따뜻한 남쪽나라라는 말은 태어나고 자란 나라, 북반구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남극을 빼고 가장 남쪽에 있다는 도시인 우수아이아에 와 있다. 이 말은 추위를 피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도 된다. 그럼에도 이 추위를 견디며 우수아이아에 온 이유는 가장 남쪽의 땅을 밟고 싶어서다. 땅끝마을을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한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남극대륙의 땅도 밟고 싶었지만 오래된 가이드북에서조차 미화 5000달러가 필요하다고 하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우수아이아에 오는 길에 들른 푼타아레나스였는데 그 때문에 우수아이아에 못 올 뻔했다. 조사해왔던 버스회사 두 곳에서 우수아이아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했다. 8월, 남반구의 겨울. 푼타아레나스와 우수아이아를 잇는 버스노선이 도로 사정으로 운행되지 않았다. 비행기도 없다. 상심한 마음에 거리를 돌아다니다 미심쩍어 보이는 버스회사에서 경유로 우수아이아로 가는 교통편을 발견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그란데까지 버스로 이동한 다음 역시 미심쩍어 보이는 승합차를 타고 눈보라를 헤치며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불안했었지만 될 대로 되라는 마음도 있었다. 


푼타아레나스에 비해 우수아이아는 할 게 많은 도시다.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 트래킹을 하면 울창한 숲과 투명한 빙하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스키나 스노보드 등의 각종 설상 액티비티를 할 수도 있고 펭귄 투어, 비글해협 투어도 있다. 비싼 남극 크루즈도 있다. 우수아이아에 두 발 내딛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이런 활동들에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온 게 아까워 비글해협 투어 하나 정도는 참여했다.


투어는 소소하게 진행됐다. 배 타고 바다사자 보고, 배 타고 펭귄 닮은 새 보고, 배 타고 등대 보고, 배 타고 가다가 섬에 내려 좀 걷다가 배 타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투어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펭귄을 보는 것인데 알아보지도 않고 싸구려 투어를 선택한 것인지 펭귄이 안 나오는 시기인지 몰라도 내 눈 앞에 펭귄은 없었다. 그리고 가이드는 참여자들을 데리고 내린 섬에서 쓰레기를 줍고 다닌다. 가이드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우리한테는 왜 시키는데. 애써 멀리 앞서 걸어 다녔다.


투어가 끝나고 돌아온 우수아이아에서 저녁으로 킹크랩을 먹었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 맛도 가격도 별 차이가 없는 이것을 또 이렇게 비싸게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시킨 거 먹어야 했다. 그래야 덜 억울하니까.


우수아이아로 오는 동안 겪은 고생과 불안을 상쇄해줄 만한 보람은 없다. 남미의 가장 남쪽 도시, 한국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도시를 가봤다는 경험이 남았다. 사실 그렇다면 애초에 목적 달성이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라는 게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우수아이아를 떠나는 세 번째 날, 특별한 호의 감정도 불호의 감정도 없이 멀어져 가는 우수아이아를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라본다. 이건 마치 해남의 땅끝마을을 찾아갔던 이유와 그 이후의 느낌과도 유사하다. 감정이 없이 그날 내가 그곳에 갔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이건 아니고)
우수아이아
영화에 나와 유명해졌다지만
얼핏보면 펭귄, 그러나 펭귄은 아닌
봉사활동도 아니고 돈내고 참여한 투어에서 쓰레기를 줍고 다니고 싶진 않다. 
사실 이것 때문에 온 것이랄까... 서울에서 15,811km 근데, 일본이 더 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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