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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Apr 24. 2019

탱고 본고장에서 탱고를 보고

아르헨티나_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니 숙소에 남아 있던 여행자 몇 명이 탱고 공연 관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보러 갈 생각이 없었지만 공연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니 약간의 욕구가 생겼다. 더불어 빙하투어를 같이 했던 형이 BA(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 있다며 탱고 공연 볼 사람 없냐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공연은 예약됐고 BA에 도착한 지 5시간 만에 나는 다른 사람 3명과 함께 탱고 공연장 안에 앉아 있었다. 


엄숙하고 정중한 분위기에 다들 있어 보이는 옷들을 입고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한 격식 있어 보이게 하려 챙겨 입고 나왔지만 장기 여행자의 옷은 아무리 꾸며봐야 한계가 있었다. 그런 시간을 견디란 의미인지 때에 맞게 식사가 준비되었다. 맛있는 줄 모르겠다. 테이블에서 와인 한 병을 시켜 나눠 마시자 음식도 조금씩 입에 들어왔다. 식사를 마쳐갈 때쯤 사회자가 나와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처음 보는 탱고 공연이다. 어떨까? 기대와 걱정이 함께 찾아왔다.


시작했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음악에 남녀 한 쌍의 무용수가 탱고를 췄다. 탱고겠지? 탱고 공연이니 탱고가 맞을 거다. 음악은 낯익었지만 동작은 낯설었다. 저런 게 탱고였던가. 현란한 것 같고 화려한 것 같은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내가 절대로 따라 하지 못할 몸동작이라는 것이다. 음악이 바뀌고 모르는 곡으로 이어지는 공연에 슬슬 지루함을 느꼈다. 식사와 함께 마신 두어 잔의 와인 탓인지 점점 졸리기도 했다. 결국 졸았다. 학창시절을 견디게 해 준 수업 듣는 척 졸기 기술 덕에 고개를 떨구는 참사 없이 마치 공연을 보는 듯 가만히 눈만 감고 졸았다. 잠시 후 눈을 뜨면서 조용히 눈치를 봤다. 내가 졸았음을 눈치 채지는 못한 것 같다. 다행이다. 이후의 공연은 버텨냈다. 누군가는 즐기고 감동하며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겐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잘 버텼고, 공연은 끝이 났다. 


공연장을 나온 후 근처 카페에 들어가 공연에 대한 후기를 나눴다. 모두 좋은 공연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중 3일째 탱고를 보고 있다는 한 명은 오늘이 가장 좋았으며, BA에 머무는 내내 탱고를 봐야겠다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좋거나 인상적인 부분에 대한 감상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졸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지루해 잠을 자버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공연 2부 같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리필되지 않는 커피가 원망스러웠다. 


탱고 무식자(無識者). 나아가서는 공연, 예술 무식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내가 그렇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모범생으로서 살아왔는데 세상에는 공부 이외에도 내가 보고 경험해야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춤을 출 줄 알았다면, 음악을 할 줄 알았다면,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좋았을 게다. 적어도 그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만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게다.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들을 내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의 삶이 더 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하나를 더 보러 갔다. 심지어는 혼자 갔다. 푸에르자 브루타(Fuerza Bruta). 이번에는 졸지 않았다. 좌석이 없는 스탠딩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눈을 뗄 수 없는 몸동작들과 신기한 장면들이 계속됐다. 마술쇼 같다가도 서커스 같았다. 작품의 의미를 따지기 전에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어떻게 저런 장면들을 시연해낼 수 있을까 원리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렇게 가끔은 재밌는 공연도 있다. 더 많은 공연들이 재미있을 수는 없을까.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들이 내게도 재미있을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알고 나서 보게 되면 조금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나름 혼자서 알아본다고 노력해봤지만 힘들었다. 너무 방대했으며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론과 실제를 접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초등학생에게 스스로 양자역학을 공부하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탱고를 보고, 아마도 훌륭했을 탱고를 보고, 그것도 7만 원이나 하는 가격에 탱고를 보고 우울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비참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예술을 즐기기 못하는 게 뭐 죄인가. 탱고를 본 다음날, 공연이 너무 지루해서 잠이나 자 버렸다고 같이 갔던 사람들에게 말해 버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 재미없는 것도 감상이다. 괜히 문화인 인척, 고상한 척 나를 포장하지 말아야겠다. 가끔은 내게도 재밌는 공연이 있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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