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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May 29. 2019

높은 곳에 임한 예수

브라질_리우 데 자네이루

8살 때는 껌 하나를 얻기 위해 교회를 갔었다, 군대에서는 몽쉘을 받기 위해 성당을 찾았다.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두 경우 모두 먹을 것이라는 실리적인 이유가 내게 있었다. 그것 외에는 신이나 종교가 내게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반면에 조금은 냉소적인 시각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교회나 성당에 있는 예수, 절에 있는 불상은 특별한 의미 없이 지나치는 것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리우에서의 예수상은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종교적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니까,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니까. 산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예수상의 모습은 뭔가 신비했으니까. 리우에서 딱히 계획이 없던 나에게 예수상만큼 보러 가기 좋은 게 없었다. 브라질에 내가 와 있다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 줄 유명한 랜드마크이기도 했다.


예수상을 보러 가는 길은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해 동행을 하나 섭외했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 그는 보이지 않았고 30분을 더 기다린 끝에 혼자 가기로 했다. 그 누구도 추천하지 않는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이용했다. 다행히 숙소 앞에서 예수상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트램 티켓을 사고 40여분을 기다려 트램을 탈 수 있었다. 그만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상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었다.


예수상을 세우기 위한 자재들을 실어 날랐다는 트램은 이제 이것을 보기 위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나도 이 트램을 타고 예수상에 가까이 다가섰다. 꽤 오랜 시간 트램을 타고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면 어차피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가끔 나무들 사이로 나오는 리우의 전경을 보려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20분? 25분? 만에 트램은 정상에 도착했다. 높은 언덕 위에 보이는 더 높은 예수상, 트램에 내려서도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고작 몇 분 더 걷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만큼 날씨는 뜨거웠다. 사방이 탁 트이고 바람이 땀을 씻어줄 때 드디어 예수상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예수상의 뒷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정면으로 돌아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바닥에 누워 예수상 전체를 찍으려 하는 사람, 양 팔을 들고 예수상의 포즈를 따라 하는 사람, 리우의 전경과 강 혹은 바다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숙제처럼 사진을 찍고 예수상을 한참 바라봤다. 예수상 뒤에서 빛나는 태양은 예수상의 아우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만약 예수가 진짜로 있어 자신을 본뜬 동상을 찾으러 이 사람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더구나 그 사람들이 돈을 내고, 힘들게 걸어 올라와서, 그리고 범죄의 위험을 뚫고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저 브라질의 랜드마크를 구경하고자 올라왔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종교에 대한 내 생각 때문인지 예수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신과 신이 있는 세계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을 믿는다는 것의 긍정적인 요소마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주 높은 곳에 아주 거대하게 존재하는 예수상을 보며 한 가지 의문점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예수상은 (또는 불상은) 가운데에, 높은 곳에 있어야만 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들이 위대한 존재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필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중요하고 숭배의 대상이 될수록 인간은 하찮은 존재가 되는데 그런 하찮은 존재에게 존경받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가? 생각은 복잡해지기만 했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 채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다음으로 간 곳이 하필이면 패럴림픽 양궁 경기장이었다. 주목받지 못하는 경기에서 선수들은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정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이런 선수들의 휠체어 위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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