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고 싶었지만 글이 되지 못한 음절들의 희망사항
이렇게 게으르다. ‘그렇게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멕시코의 첫 날을 기록한 지 2년 만에 남미 여행에 대한 기록을 마쳤다. 그 시간 동안 지난 나의 여행은 벌써 3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사진과 메모,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낸 기억들은 과연 당시의 내 감정들과 같은 것일까? 확실하게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어버렸다. 오래되어버린 여행만큼 오래되어버린 글쓰기. 희미해지는 기억으로 나는 내 여행과 함께 무엇을 쓰고 싶었을까?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재미있는 여행기를 쓰고 싶었지만 나의 여행은 흔히 볼 수 있는 여행기 속의 여행에 비해 모험과 에피소드가 부족했다. 무엇 하나에 깊게 감명받은 것들도 적었다. 멋지게 장소를 소개하고 화려하게 수식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과 같지 않은 것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었다.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여행기를 쓰고 싶은 사람의 일기라고 생각을 바꿨다. 무미건조하게 지나갔던 곳마저 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없는 곳에 대한 재미없는 일기라 하더라도 공개적인 플랫폼에 올라간 이상 이어지는 무관심은 내게 상처였다. 가끔 공감과 댓글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걷다가 우연히 1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하는 확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 그 100원은 나에게 하루의 기쁨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줍지 못해 슬픈 날이 더 많은 것은 익숙해지고 적응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수십 번을 고쳐보았다. 도무지 완성되지가 않았다. 타협했다. 일단 올리고 보자고. 일단 쓰는 게 습관이 되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감을 혼자 설정하기도 했다. 그 덕에 질이야 어떻든 일단 끝을 볼 수는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여행기도 일기도 아닌 이것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내가 쓰고 있다는 무엇도 천 번을 흔들려야 글이라는 것이 될 수 있나 보다. 아직 글이 되지 못한 이것들을 기록이라 불렀다. 적어도 그것만큼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 글이고 싶었던 기록들을 바탕으로 나도 제대로 된 글을 써볼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