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성냥팔이 소녀>
누구 하나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고 추운 밤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하늘에선 눈마저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광장 구석에 있는 집 처마 아래에서는 가엾은 소녀가 추위와 어둠을 피하고 있었다. 소녀는 신발도 모자도 없었다. 낡은 앞치마 속에 성냥만 가득할 뿐이었다.
소녀는 하루 종일 성냥을 한 개비도 팔지 못했다. 맨발로는 한걸음 한걸음이 쉽지 않았고 목소리는 추위에 얼어 땅에 떨어져 버렸다. 두꺼운 외투 속으로 몸을 웅크리고 땅을 쳐다보며 걷는 사람들은 소녀를 보지 못했고 단 1 페니도 건네주지 못했다.
소녀는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집이라 해봐야 지붕만 겨우 덮어 놓아 한데와 마찬가지였고, 한 푼도 벌지 못한 상태로는 아버지에게 매 맞는 것이 뻔했다. 모든 것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소녀는 성냥을 모두 파는 모습의 내일을 상상했다. 하지만 겨우 열두 살 소녀에겐 한겨울의 추위는 너무 매서운 것이었다.
소녀는 잠시나마 성냥불로 추위를 달래려 했다. 신기하게도 성냥불을 켤 때마다 따뜻한 난로, 맛있는 거위 요리,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였다. 모두가 진짜인 것만 같았다. 마지막이라 마음먹은 성냥불을 켰을 때 소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의 따스한 품, 인자한 웃음, 소녀에게 주던 사랑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지려는 찰나 소녀는 남아 있는 모든 성냥에 불을 붙일 뻔했다.
“이 성냥을 다 써버리면 내일 먹을 빵을 구할 수 없어.”
간신히 성냥에 불을 붙일 뻔한 걸 참은 소녀 앞에 토미와 줄리가 서 있었다. 가끔 광장에서 만나 서로 사온 빵을 나누던 오빠와 동생이었고 동시에 친구였다.
“내 장작을 줄게. 장작에 불을 붙이면 성냥보다 훨씬 따뜻할 거야.”
토미가 소녀 앞으로 한 아름의 장작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소녀는 토미가 배달하는 장작을 받을 수 없었다.
“괜찮아. 이 장작은 질이 좋지 않아서 팔 수 없다고 했어.”
소녀는 그제야 토미의 장작을 받아 불을 붙였지만 성냥만으로는 잘 붙지 않았다.
“내 손수건에 불을 먼저 붙인 다음 장작에 옮겨 붙이면 될 거야.”
이번에는 토미의 동생인 줄리가 나섰다.
“하지만 네가 어렵게 만든 손수건인걸.”
“괜찮아, 아까 눈길에 떨어뜨렸더니 더러워져서 팔 수가 없어. 그리고 언니가 사주던 빵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
소녀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성냥불은 손수건으로, 이내 장작으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올랐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많은 집에서 따듯한 난로 옆에서 성공적인 한 해를 축하할 때, 세 아이는 싸늘한 광장의 구석에서 작은 모닥불에 의지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소녀는 모닥불 옆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둘을 보며 내일은 오늘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소녀는 성냥공장으로 향했다.
“브라운 아저씨, 성냥을 훨씬 더 많이 주세요. 돈은 성냥을 다 팔고 나서 드릴게요. 신발을 사서 더 멀리까지 가서 팔아야겠어요.” 소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너라면 믿을 수 있지. 신발 살 돈은 내가 먼저 줄게. 네가 성냥을 더 많이 팔 수 있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브라운 아저씨가 웃으면서 성냥과 돈을 내어주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성냥을 다 팔면 바로 올게요.”
다음으로 소녀는 신발가게로 갔다.
“매리 아주머니, 발이 편해서 오래 걸을 수 있는 신발을 주세요. 돈은 여기 있어요.”
매리 아주머니는 소녀에게 딱 맞는 신발을 골라주었다. 그리고 따듯한 외투도 한 벌 입혀주었다.
“이 옷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혹시 성냥을 많이 팔게 되면 빵 한 봉지만 사다오.”
“고마워요 아주머니. 제가 꼭 빵 한 봉지, 아니 열 봉지로 사다 드릴게요.” 소녀는 더욱 힘을 얻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발가게에서 나온 소녀는 성당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밤에 춥게 자면 다음날 많이 움직일 수가 없어요. 춥지 않게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오 이런, 성당 안에서 기도만 하다 보니 너 같은 아이가 있다는 것도 몰랐구나.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기도실이 있단다. 혹시 너와 같은 아이들이 또 있니?”
“두 명이 더 있어요. 그들은 남매인데 토미와 줄리에요.”
“그래, 그 아이들도 같이 오려무나.”
잠 잘 곳까지 해결한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성냥을 팔러 나갔다. 이번에는 성냥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줄리가 만든 손수건도 같이 팔고, 토미가 장작을 배달할 수 있는 집도 같이 알아보았다. 이렇게 되자 줄리는 손수건만 만들면 됐고 토미도 장작이 필요한 집을 알아보러 다니지 않아도 됐다. 도시의 외곽으로 나가니 쉽게 성냥을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소녀의 성냥을 많이 사줬다. 소녀의 성냥도, 줄리의 손수건도, 토미의 장작도 훨씬 많이 팔 수 있게 되었다.
며칠에 걸쳐 모든 성냥을 다 판 소녀는 브라운 아저씨에게 가서 신발값과 성냥 값을 치렀다. 매리 아주머니에게도 빵 한 봉지를 사드리며 아홉 날 동안 더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부님께 감사의 선물로 드릴 은색 책갈피를 사서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앞에는 신부님은 물론이고 토미와 줄리, 두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가 같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띄고 소녀를 맞이했다. 소녀는 은색 책갈피를 신부님께 드리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신부님은 소녀가 성냥을 팔러 나간 몇 날 동안 토미와 줄리의 어머니, 소녀의 아버지를 만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을 설득도 하고 일자리까지 알아봐 주었던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자그마한 꽃망울이 피어나기 시작할 때, 소녀, 그리고 토미와 줄리의 손에는 성냥도 장작도 손수건도 없었다. 대신 자그마한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가방에는 ‘아이린’이라는 낯선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이제 매일 아침, 신부님도 브라운 아저씨도 매리 아주머니도 소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린, 좋은 아침이야!”
더 이상 성냥팔이 소녀가 아닌 아이린도 큰 목소리도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소녀의 성냥보다 인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