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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란드리아 Jul 09. 2024

내 브런치에도 정체성이 있을까?

브런치 작가라면 다들 하는 고민일지도


브런치 작가가 된 지 9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는 못했다. 중간중간 방치한 적이 더 많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올린 것이 2년이 채 되지 않으니 브런치 작가 경력을 말하기도 멋쩍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일주일에 최소한 한 편 이상의 글을 쓰려했고, 내 '작가의 서랍'에는 쓰다가 만 글, 제목만 달아두었거나 간략한 내용만 정리해 둔 글들도 꽤 있다. 읽은 책 감상문을 작성하겠다고 목록 작성해 둔 것도 이미 몇 년째 쌓이고 있다.


2년 전,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면서 '책'과 '독서'를 테마로 잡았다. 가급적이면 그 내용들 위주로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러다가 개인적인 생각이나 일상을 가볍게 드러낼 수 있는 글들도 쓰기 시작했고, 나의 1990년대 이야기를 브런치북으로도 만들어 봤다. 브런치북 연재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새로운 연재 준비가 된다면 다시 시도해보고 싶다.




내가 쓰는 글들은 모두 (브런치북을 제외하고) 매거진에 속해 있다. 이는 가급적 주제를 분산시키지 않으려 한 것인데 글들이 산만해지면 내 브런치의 정체성이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브런치에 정체성이란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브런치에 정체성이 필요한가?'라는 생각과 함께.


사실 정체성이라는 표현은 좀 거창한 것 같아 '주제'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정체성이라고 표현하면 뭔가 나의 의지가 좀 더 반영이 되는 듯하다. 나는 그것을 표현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일 테니.




2015년 9월 3일,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받은 메일을 아직도 보관 중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내 브런치의 정체성은 책과 독서다. 하지만 내가 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개인적인 소감에 지나지 않으며, 그냥 독서토론회에서 서로 떠드는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도 안다. 주관적이고 편향적일 수도 있다. 내가 문학 이론을 잘 알아서 비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내가 읽는 책들의 분야가 너무 다양하다 보니 아우르기가 어렵다. 나는 책이라면 그냥 다 좋아하는 평범한 '책 덕후'일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한다. 사실 글쓰기는 이게 가장 쉽다. '에세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신변잡기적이고, 이는 일기에나 써야 할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기만큼 솔직하게 쓰지는 못하고, 읽는 이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에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기 일쑤다.


그런 글들이 관심을 끌 수도 있지만 과도해지면 독자의 피로도도 상승한다. 사실 그런 글들이 SNS나 블로그에 너무 많고, 브런치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동안 브런치를 여러 번 방치했던 이유는 굳이 이곳에 글을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SNS나 다른 블로그, 커뮤니티에 올렸던 것을 반복해서 여러 곳에 남기는 것도 꺼렸다. 브런치와 다른 플랫폼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저 블로그의 변형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새삼 깨닫게 된 것. 브런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출판을 지향하는 곳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읽을 때도 출판을 지향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작품들이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이는 브런치에서 '작가' 자격을 부여받고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며, 브런치 플랫폼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이 그렇게 책으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내가 출간을 지향하며 글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목표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에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 그러다가 정말 내 안에서 '글의 정령'이 넘쳐흐른다면 신들린 것처럼 글을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브런치가 뭐 그렇게 대단한가? 여기에서 정체성을 논해야 할 정도로 숙고가 필요한 것인가? 그냥 즐겁게 글을 쓰고 읽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잘 알고 있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다. 전자는 전문가끼리의 자리에서 논하면 된다. 이미 학회나 저널에서 논하던 것을 구태여 여기까지 끌고 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반면, 내 분야의 주제들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가 있기도 하다. 어쩌면 대중들은 그런 새로운 내용들에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정보를 찾던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내 전공 분야가 아니더라도 과학이나 물리학의 일반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 그런 것은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도 그러한 대중적인 과학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또는 아예 분야를 틀어서 문학 작품과 이론을 좀 더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학기부터 문예창작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 그리고 느낀 것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너무 학구적이 될까 봐 여기에서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쨌든 현재는 내가 쓰고 싶은 글, 좋아하는 글들을 지속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지향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뀌어가는 것이듯, 나의 브런치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연속된 변화 속에서 정체성이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만은 지키도록 하자. 하나는 이제 브런치를 다시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난잡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벼운 글을 쓰고 가볍게 소비하는 패턴은 지양하고 싶다. 브런치에서마저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내 브런치를 찾아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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