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란드리아 Aug 02. 2024

심진경, 김영찬 <명작은 시대다>


나는 올해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하여 소설론, 한국문학사 등에서 소설사를 배우게 되었는데, 특히 각 시대별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 그리고 평론의 변화 등을 공부하면서 평론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이에 여러 평론집들도 구입해서 읽고자 했고, 마침 내가 구매해 두었던 <명작은 시대다>가 독파에 올라와 챌린지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지난 2017년 경 국민일보에 "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라는 기획으로 연재되었던 기고글을 모아 펴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나 수준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단점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다른 평론집이 다소 어렵고 분량도 많았던 것에 비해 이 책은 분량도 적고 상대적으로 쉽게 읽혔다. 저자들도 일반적인 독자 수준을 고려해서 쉽게 쓰려했다고 한다. 


심진경, 김영찬 두 명의 평론가가 번갈아가며 자신들이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에 대한 평론을 이어간다. 물론 처음부터 릴레이식으로 쓴 건 아니라 편집할 때 교차 편집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방식이 각 평론가의 시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점이기도 했다. 


각 평론가가 선정한 작품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차례에서 발췌)



심진경


책머리에 | 뜨거운 열망의 흔적들에게

① “자유부인”이라는 공공의 적 …… 정비석, 『자유부인』

② 불안한 청춘의 표정과 부끄러움 …… 김승옥, 『서울 , 1964년 겨울』 

③ 소시민, 천박하거나 가련한 …… 이호철, 『소시민』 

④ 살아남은 여자는 슬퍼라 …… 박완서, 『나목』 

⑤ 청년이 호스티스를 만났을 때 …… 최인호, 『별들의 고향』

⑥ 여자는 어떻게 성장(못)하는가 …… 오정희, 『유년의 뜰』

⑦ 우익 문학청년의 탄생 ……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⑧ 아비 없는 세상에서 …… 김원일, 『마당 깊은 집』

⑨ 죽어도 계속되는 이야기 …… 박경리, 『토지』

⑩ 미성년의 인공 낙원 …… 장정일, 『아담이 눈뜰 때』

⑪ 이토록 험난한, 싱글 라이프 싱글 레이디 …… 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⑫ 세기말적 불륜 …… 전경린,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⑬ 헬조선 탈출 전말기 …… 김영하, 『검은 꽃』

⑭ 2000년대식 정신승리법 …… 김애란, 『달려라, 아비』 

⑮ 저들의 고통이 내 몸 안에 있다 …… 한강, 『채식주의자』


김영찬


책머리에 | 오래된 문학의 전성시대에게 

① 전쟁의 허무와 그 불만 …… 황순원, 『나무들 비탈에 서다』

② 불가능한 혁명과 고독한 드라큘라 …… 최인훈, 『회색인』 

③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 손창섭, 『길』

④ 어서 말을 해! …… 이청준, 『소문의 벽』 

⑤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하리 …… 이문구, 『관촌수필』 

⑥ 복수는 나의 것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⑦ 불타는 책 …… 조영래,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

⑧ 문학의 언어로 쓴 전쟁자본론 …… 황석영, 『무기의 그늘』 

⑨ 저 별이 내 가슴에 …… 조정래, 『태백산맥』 

⑩ 신화와 상처 …… 신경숙, 『외딴방』 

⑪ 사랑 없이 사랑하는 법 …… 은희경, 『새의 선물』

⑫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저주받은 걸작 …… 백민석, 『헤이, 우리 소풍 간다』 

⑬ 진리는 삼천포에 있다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⑭ 살아남음의 치욕과 ‘끼니’의 비애 …… 김훈, 『남한산성』 

⑮ 그렇습니까? 사랑입니다 ……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시대의 소설을 선별하고 살펴보는 일이 어느 면에선 철 지난 기획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명작의 기준은 물론이고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명작이라는 개념이 대변하는 문학적 권위도 불변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문학장과 독자의 의식에 파장을 일으키고 시대의 변화를 대변했던 작품들이 있다.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소설은 물론이고,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고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소설. 이 책이 돌아보는 것은 그런 문제작들이다. 
해방 이후 한국소설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전시장이었다. 자유부인, 소시민, 무작정 상경 소년, 작가 지망생, 무기력한 지식인,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난장이, 억척어멈, 호스티스, 청년, 혁명가, 욕망하는 여자, 싱글 레이디, 여공, 백수, 저임금 노동자 등등. 그들은 시대의 변화와 현실의 격동을 제 몸으로 살았던 문제적 인물들이다. 오래도록 한국 소설은 이들을 통해 시대의 본질과 욕망을 드러내고 주어진 현실을 넘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뜨거운 열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이 기록한 것은 저 다종다기한 캐릭터들에 하나하나 스며 있는 열망의 흔적들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 아닐까? 그렇게 삶은 계속 변화하면서도 이어진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숨가쁜 격동과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한국문학은 언제나 그런 현실의 변화에 민감했다. 한국문학은 변화하는 한국인의 삶과 운명을 들여다보는 창이었고,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는 대중들의 불안과 욕망을 반사하는 거울이었다. 그것은 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운동에 자기를 내던지는 결단의 무기이기도 했고 소망하는 미래를 꿈꾸는 통로이기도 했다. 
한국소설은 그렇게 당대의 현실 및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고 소화하면서 시대와 함께 호흡했다. 문학사의 중요한 소설들은 그럼으로써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고 또 대중들의 삶의 감각과 소망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시대의 창이 되었다. 명작은 그렇게 탄생한다. 명작은 시대의 정신과 공기를 문학적으로 승화해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일군 소설, 그리하여 현재에도 보편적 가치를 발하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두 평론가가 평론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느껴졌다. 심진경 작가는 개인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듯 한 반면 김영찬 평론가는 사회적인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하다. 특히 심진경 작가는 여성,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작품을 분석하는 경우가 많아 작품 선정이나 평론에서 그러한 시각도 보였다. 물론 그렇게 구분해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두 사람은 부부라고 한다.




이 책이 소설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 작품이 창작된 시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두 평론가가 선정한 작품들,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설 (평론이라기보다는 해설에 더 가깝다고 여겨지지만 해설과 평론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을 보며 두 사람의 차이를 느꼈지만, 그렇게 정리된 각 열다섯 편, 총 서른 편의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다른 거울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완전한 거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작은 조각들이 비추는 사회상을 통해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그 시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평론집에서는 1950년대부터의 작품들을 다루었는데 현대소설사는 대체로 그러한 시기를 대상으로 한다. 이는 해방 이후의 혼란기,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이후 개인과 사회가 겪게 된 변화가 너무나 컸고,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작가들도 그러한 것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모두 동일한 주제를 가질 수는 없는데 이는 개개의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 중에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었고, 안 읽어본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공부 겸 한 작품씩 읽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는 소설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품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도 있기에 단지 소개글을 읽은 선에게 그치지 않고 작품을 직접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적은 분량으로 많은 책들을 소개하려다 보니 깊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대중성을 고려했기 때문이겠지만 조금 더 분량을 늘렸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독파 후 심진경 평론가와 함께 온라인 북토크를 하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평론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한 것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셔서 여기에 정리해 본다. 



Q) 평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A) 평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분석하여 자신(비평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일관적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서 비평가가 말하고자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며, 평론도 그러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문학은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평론도 단순히 비평 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즉, 현실의 변화나 흐름을 담아내야 한다. 더불어 시대에 대하여 작가만큼의 장악력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Q) 평론을 읽을 때 '원작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원작자의 의도가 정말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평론가로서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는가? 원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하는가? 

A) 비평가는 작품을 해부하듯 분석하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작품을 읽으면 작가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비평가가 작가의 시녀나 하인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늘 작가를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가의 뜻을 거스를 수도 있다. 


또한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해도 시대가 바뀌면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도 바뀌므로 그것이 그대로 통용되기는 어려우며,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러한 평가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작품은 세상에 던져진 것이므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나의 작품이 여러 비평 이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평 수업에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여러 비평 이론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작품을 한 가지 방식, 시선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그러면서 심진경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때로는 유해한 책도 있으므로 책을 읽을 때 책에 동화되지 말고 책과 거리를 두고 읽기를 권고한다. 즉, 비판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책과 책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있으므로 그 길을 찾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