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많이 산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많이 사지만 책 사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책 한 권에 대해 그냥 밥 한 끼 먹었다고 친다. 그렇다고 책을 무한정 살 수는 없는 일. 물론 책값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책값도 기회비용이니까.
새삼 출판사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순수문학, 인문학 책을 꾸준히 내주는 출판사들에게.
순수문학 쪽에서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들인 문학동네, 민음사, 창작과비평사(창비), 문학과지성사(문지), 을유문화사 등을 보면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혹시나 출판사가 어려워져 문을 닫게 되지나 않을까라는 걱정도 하게 된다.
출판사도 사업체이기에 수익을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책이 많이 팔려야 하지만, 출판시장 자체가 어렵고 특히 순수문학 쪽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사실 문학동네나 민음사, 창비 정도는 그렇게 걱정을 안 한다. 그런 대형 출판사들은 알아서 잘할 테니까. 비록 수익을 내는 분야가 순수문학 쪽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출판사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문학과지성사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쩌면 가장 소신과 지조를 지키는 곳이 문지인 것 같지만 그래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곳이기도 하다. 수십 년째 뚝심 있게 시선집을 내고 있지만 그걸로 수익이 날 리는 없다. 문지 시선집을 가끔 구입하는데, 나온 지 수십 년 된 시집도 몇 쇄 못 찍은 것들이 많다. 시집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장 안 팔리는 분야니까. 문지에서도 물론 다른 책들이나 번역본도 내지만 위에서 열거한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가장 열악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순수문학을 좋아했고, 문예창작을 공부하면서 작가들의 입장을 더 느끼고 있기에,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든다면 국내 문학계 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더 문학을 찾지 않고, 인플루언서나 유명인이 언급해야 겨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상황에서, 그래도 책임감을 갖는 출판사들이 있으니 문학계도 버틸 수 있고, 작가들도 자신의 책이 나오는 것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잘 팔리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책을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내가 책 몇 권 산다고 해서 출판사 사정이 나아질 리 없겠지만 그래도 그 운명의 공동체에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을 산다. 그 운명의 공동체는 작가-출판사-독자다. 서점은 제외하고 싶지만, 독립서점과 같이 책을 사랑하는 일부는 그 공동체에 포함시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