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문제의식에 대한 파악이 작품 해석에 있어서 왜 중요한가?
소설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없다. 소설을 읽는 목적에 따라 읽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고, 굳이 그러한 목적이 없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집중해서, 분석적으로 읽고 싶다면 인물, 사건, 배경에 주목할 수도 있고, 플롯이나 전개, 구성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다. 혹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할 수도 있다.
소설은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거나 혹은 의미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주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소설의 주제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적인 사상이나 의미이다. 이는 곧 작가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데, 대부분 작가는 자신이 택한 소설의 주제에 대해 집요하게 달라붙어 그 문제를 심화하고 확대해 나간다. 즉, 작가의 문제의식이 작가의 사유와 창작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이 주제인 것이다.
부룩스와 워어린은 "주제는 소설이 쌓아 올리는 것으로 사상이며 의미"라 했고 퍼시 러복은 "주제가 소설에 있어 가장 최초로 존재하는 것으로, 어떤 주제를 발견할 능력이란 그 작가의 기초적 재능"이라고 하였다.
또한 카실은 "주제는 스토리이지 모럴이 아니며, 결말이 가져오는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라며, "작가가 자기의 소재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주제"라고 하였다. 이는 자신이 채택한 소재(제재)들이 주제를 이루므로 소재들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문제의식이라는 책임감 아래 인물, 사건, 배경과 같은 제재들을 선택하고 배치하며, 이들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주제를 형성하게 된다.
소설 주제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지만 근원적인 주제, 현실적인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체로 현실적인 주제보다는 근원적인 주제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데 이는 철학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작품을 통해 찾아간다. 물론, 그 답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는 어렵다. 세상에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질문의 출발점이자 작품을 끌고 나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문제의식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따라서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앞서 예로 든 소설을 읽는 여러 방법들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파악하는 과정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여러 장치를 추가하며 조립해 나간 것처럼, 독자 역시 그러한 장치를 분해해 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작가가 구상한 설계도가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분해한 조각을 재조립하는 과정, 혹은 퍼즐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가 완결된다.
이렇듯 작가는 독자가 단순히 수동적인 텍스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가 되는 것을 요구한다. 좋은 작품들은 대체로 주제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작가의 문제의식과 주제를 작품 곳곳에 정교하게 숨겨 놓아 독자가 그것을 찾도록 하기도 한다. 독자는 작가가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제재들을 가공하여 작품 곳곳에 배치해 놓은 것들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 그것들의 의미를 깨달아 나가게 된다. 주제는 그러한 수수께끼를 푸는 힌트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주제는 작품의 초중반까지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약 초반부터 그러한 것이 드러난다면 독자는 금방 호기심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소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 즉 문제의식을 짐작해 보는 것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 주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내에 주제를 잘 감춰둬야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이 전혀 찾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주제는 소설 전체의 줄거리를 파악하거나 혹은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작가의 생애나 배경 등을 알고 있다면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소설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한 작품 내에 여러 가지 주제가 나타나는 예도 있어서 다양한 해석을 야기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독자이기에, 그 독자가 이해한 것을 '오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만약 독자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작품에 주제를 제대로 담지 못한 작가의 역량 때문이기도 하고, 독자의 문해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잘못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잘못된 방향으로 독자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책임이 큰 만큼 독자의 책임도 크다. 이를 나는 이렇게 본다.
빛은 모든 경로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률이 높은 방향을 향하게 된다. 이를 양자전기역학에서는 '경로의 합'으로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소설 작품의 해석도 여러 가지가 가능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작가가 이미 설정해 놓은 방향이다. 그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해석의 유연성의 폭은 있겠지만 방향 자체가 크게 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을 읽는 동안 작가의 문제의식은 독자와 동행하게 되며, 주제를 통해 작가는 독자와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이는 독자에게 전해져 사회로 더 확장되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많은 작품들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소설이 단순히 유희로 읽고 마는 것에 그쳤다면 이 장르가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문학이 가치를 가질 수 있었을까.
깊은 사유와 지적인 탐구의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 사람들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참고한 자료: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소설론> 강의 자료
이규정, <현대소설의 이론과 기법>, 박이정,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