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떠올린 책들
러닝이 유행이다. 예전부터 조깅이나 러닝은 꾸준히 인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왜 '유행'이라는 말까지 붙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러닝 크루를 중심으로 한 집단 달리기 문화의 활성화와 마라톤 대회 참가 러시, 러닝 아이템들의 홍수가 그러한 열풍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부터는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2월에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유행에 편승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꽤 오래전에도 꾸준하게 러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진 20 년 만에 다시 러닝을 하게 된 것이다.
러닝을 다시 시작하면서, 초기에는 트레드밀 ('러닝머신'이라는 말보다는 아무래도 원래의 명칭을 쓰는 것이 나을 듯하여 나는 이 단어를 쓴다) 위에서 주로 뛰었지만, 최근에는 트레드밀과 야외 러닝을 반반씩 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주로 근력 운동 후 유산소 운동으로 보충하는 개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러닝을 거의 하지 않아서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려고 하다 보니 30대 초반의 체력보다 오히려 더 나아지는 듯하다. 다른 운동의 병행과 식단 조절 덕분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아직 초보 러너 수준이라 기록이나 속도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리하지 않게, 다치지 않게, 오래, 꾸준히 뛸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할 따름이다.
그러기 위해 유튜브 동영상이나 러닝에 대한 책들을 보고 있다. 유튜브에도 수많은 러닝 동영상들이 있어서 러닝 용품에서 달리기 자세, 훈련 방법, 부상 대처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여느 정보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자기가 맞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는 하다. 그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적절하게 골라 적용해 보는 시행착오 과정도 불가피할 것이지만, 무리하게 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러닝을 포기하게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러닝 관련해서 읽은 책 중에는 정말 훈련법에 집중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달리기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해 본 책들도 있다. 그런 내용에 다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러닝에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다 보니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 두 권을 소개해 본다.
먼저 권은주의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은 올해 4월에 출간되었으며, 전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이자 현재는 선수들 및 일반인들을 지도하는 권은주 감독이 자신의 경험 및 일반인들을 지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중간중간, 그리고 뒷부분에는 러닝에 대한 조언과 훈련법도 수록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러닝 입문서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그래도 이 책은 러닝에 대한 동기 부여와, 러닝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해준다. 왜 뛰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러닝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책이며, 자기계발서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
권은주는 현역 시절 여자 마라톤 한국 신기록을 세운 뒤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으나 무리한 훈련을 통해 부상이 잦았고, 결국 이후에는 제대로 된 경기를 해 보지 못한 채 은퇴했던 경력이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책망하지만, 그렇다고 달리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록의 강박에서 벗어난 뒤에야 달리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즐거움을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량도 많지 않고 담담한 문체로 적어 내려간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러너라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러너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또 다른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love'를 'running'으로, 'we'를 'I'로 바꾼 것이다. 소설가이자 영문 번역가인 하루키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미 꽤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아마 10 년은 넘은 듯하고, 20 년은 안 된 것 같다.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온 지 20년은 안 되었으니까. 나의 30대 그 어디쯤. 하루키를 좋아했기에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들을 꽤 읽었는데, 아마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루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일상에서 달리기를 빼고 논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달리기를 사랑했고, 수십 년 동안 거의 매일 달렸다. 또한 매년 한 번 이상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고, 트라이애슬론과 울트라마라톤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빨리 달리는 러너는 아니며, 그렇다고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책 전반에서는 기록에 대한 그의 욕심도 엿보인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하루키의 이력을 잘 알고 있어도 그의 데뷔 초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에게 달리기는 글쓰기와 동급이다. 성실하고 묵묵히 달리고, 성실하고 묵묵히 글을 쓴다. 어찌 보면 그는 글을 쓰기 위해 달리는 셈이기도 하다. 건강 관리 측면에서도 달리기는 가장 좋은 운동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가 무모하게 시작했던 풀코스 마라톤 도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출간 시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대회를 준비했고, 대회를 치렀는지 실감 나게 묘사했다. 특히 그리스 아테네부터 마라톤까지, 뙤약볕 아래 혼자 뛴 이야기가 인상 깊다. 하루키의 산문들이 그렇듯,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몰입도가 꽤 높으며, 중간중간 당시 사진을 삽입하여 현장감도 살렸다.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출간 시점에서 그는 이미 25년 정도 달리기를 이어 왔다고 하니 현재는 거의 45년 가까이 한 셈이다. 7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매일 달리며,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그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적어도 나는 그의 열성적인 팬이지만) 그의 성실함만은 본받아야 할 것 같다. 글쓰기도, 달리기도. 특히, 작가가 되려면 체력도 중요하며, 달리기도 잘해야 한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본다.
번외이긴 하지만, 하루키의 이 책과 관련하여 아래의 책도 검색되어서 읽어 보았다.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동명의 책이 2021년에 처음 나왔다가 2025년 3월에 다시 나왔는데, 최근에 참가했던 보스턴 마라톤 이야기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개정판이기는 하지만, 아마 최근의 러닝 열풍에 힘입어 다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사이 저자는 16년 차 러너에서 20년 차 러너가 되었다.
그가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에 대해 머리말 및 본문에서 해명했는데, 그 역시 위에서 소개했던 하루키의 책에 영향을 받아 달리는 범위를 넓혔기에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이 책에 대한 반감이 든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러너인 저자가 그동안 달리면서 겪은 일과 느낀 점, 특히 가족 및 친구, 지인들과 함께 달리기를 통해 얻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내용이 다소 산만하며, 달리기 이외에 신변잡기가 많아 집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여행 이야기와 몇 가지 지식을 '인문학'이라는 구색 맞추기로 넣었고, 챕터 뒷부분마다 간단한 달리기 조언을 넣었다. 하지만 그 효용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또한 저자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어서 전체적인 구성이나 문장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달리기에 대한 그의 진정성 마저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와 출판사의 과욕이 이상한 책을 만들어낸 것 같다. 하긴, 요즘 나오는 에세이집 중에는 이런 류의 것들이 많으니 이 책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이해는 한다. 뭔가 팔리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 그 고충을.
이 외에도 달리기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동기 부여가 된다. 나는 아직 달리기에 대해 이렇다 할 얘기가 없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달릴 것이라는 다짐을 해 본다. 적어도 러닝의 즐거움을 다시 알게 되었고, 내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