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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후기

제이슨 베일 <술의 배신>

우리가 몰랐던 술에 관한 오해와 진실

by 칼란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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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끊은 지 2년 정도 된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고, 여행이나 가족 모임에서는 (운전할 일이 없을 때) 맥주 한 잔 정도 마시기는 한다. 그 외에도 가끔 무알콜 맥주 (알콜 도수 0.05% 미만)나 무알콜 와인을 마신다. (여담으로, '알콜'의 표준어 표기는 '알코올'이지만, 일상적으로는 '알콜'을 더 많이 쓰기에 여기에서도 '알콜'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다소 이른 나이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대학생 때는 거의 매일 술자리를 갖다시피 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사회 생활 하면서 그 이전만큼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자리는 피하지 않았다. 사실 술보다는 술자리 자체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40대가 되어서는 식사 때 술 한두 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지만, 전통주도 좋아한다) 곁들이는 '반주'를 즐겼다. 과음하지 않으니 별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술을 안 마시게 된 것이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운전을 해야 하니 모임이나 회식 때 굳이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고, 딱히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술과 멀어지게 됐고, 이전에 술 마시고 숙취로 괴로웠던 기억들이 금주의 의지를 강화시켰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술은 거의 안 마시게 될 것이다.




우연히 제이슨 베일(Jason Vale)의 저서 <술의 배신>을 읽었다. 원제는 <Kick the Drink... Easily!>인데, 번역본 제목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제가 '술을 뻥 차버리는 느낌'이라면, 번역본 제목은 '뭔가에 속아서, 억울하게' 술을 끊게 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이 인간들을 배신했나? 술을 만든 것도 인간이고 마신 것도 인간인데. 술은 잘못이 없다. 인간이 잘못한 것이지.


제이슨 베일은 영국의 건강칼럼니스트이며, 주로 '주스 요법'과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 그가 쓴 책 중 다수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술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완전히 뒤집고, 술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말하고자 했다. 저자 자신이 15 년 간 음주를 했던 경험과 이후 금주에 성공했던 비결을 바탕으로 독자들도 금주에 성공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한 것이다. 무엇보다 '술에 대한 세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저자는 술이 마약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술을 다른 마약과 비교한다. 또한 책에서 수시로 술을 가상의 '바나나 중독'과 비교하며, 사람들이 바나나 중독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데 왜 술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흔히 알코올 중독자를 알코홀릭이라 부른다고 이해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오해다. ‘알코홀릭’은 알코올 중독자가 니코틴이나 헤로인 같은 일반 마약 중독자와 다르며, ‘알코홀리즘’은 알코올 중독이라는 질병이 일반적인 약물 중독과 다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똑같은 마약 중독자이며, 똑같은 마약 중독이라는 질병이다.


이 책에서는 이것이 '사회적 세뇌'의 결과라고 하였다. 우리가 아주 어릴 때부터 미디어, 광고, 사회적 관습을 통해 '술은 즐거움, 사교, 스트레스 해소에 필수적'이라는 메시지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술에 대해서는 이상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술이 없으면 파티가 재미없고, 힘든 하루의 보상은 술 한잔이라는 생각 역시 사회가 심어 준 세뇌의 결과이다.


그는 "우리를 술의 덫에 빠져들게 하거나 술을 끊은 뒤에도 술을 갈망하게 만드는 광고와 선전의 종류는 두 가지"라고 하였다. '상업적 직접 광고'와 '다른 음주자들'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러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강화하였다.


저자는 '중독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알콜은 즐거움을 주는 물질이 아니라, 실제로는 독성이 있는 중독성 마약이다. 술을 마셨을 때 느끼는 일시적인 해방감이나 즐거움은 알콜의 작용이 아니라, 이전 음주로 인해 발생한 금단 증상이 잠시 해소되는 것일 뿐이다. 즉, 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그것을 아주 잠시 해결해 주는 척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술의 단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의 주장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중 대다수는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 마약은 액체 형태(액상)이며 부패(발효)의 산물이다.
• 맛이 역겹다.
• 중독성이 아주 강해 한번 섭취하면 평생 중독 상태로 지낼 가능성이 크다.
• 평생 섭취한다면 10만 파운드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 효과가 아주 강한 독성 물질이다.
• 섭취할 때마다 뇌세포 수천 개가 파괴된다.
• 섭취한 다음 날이 되면 뇌가 쪼그라들 정도로 탈수 효과가 강하다.
• 모든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 멍하고 몽롱하게 만든다.
•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도록 만든다.
• 신체적, 정신적 반응을 지연시킨다.
•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소통할 능력을 손상시킨다.
• 말을 할 때 혀가 꼬부라지도록 한다.
• 자연적 두려움을 없애 외부 위험에 취약해지도록 만든다.
• 뇌와 입 사이의 검문소를 제거함으로써 어리석든 공격적이든 악의적이든 무례하든 상관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발설하게 한다.
• 자신이 더 용감하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
• 그런 환상을 경험하면 이 마약에 완전히 의존하게 되고 이 약 없이는 즐길 수 없게 된다.
• 몸이 이 마약에 대한 내성을 즉시 발달시키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환상 효과를 얻으려면 더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한다.
• 더 많이 섭취할수록 몸과 마음은 더 가라앉는다. 몸과 마음이 더 가라앉을수록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
• 진정한 용기를 빼앗아간다.
• 진정한 자신감도 사라지게 만든다.
• 자존감을 잃게 한다.
• 평생 이 마약의 노예가 되도록 만든다.
• 궁극적으로 이 마약의 사용자는 인생을 망치게 되면서 이 마약의 노예가 된 것을 비관하며 자신을 경멸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 이 마약은 독성이 너무 강해 몸이 최대한 이 물질을 신속히 제거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섭취하면 구토를 포함해 심한 신체적 거부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 이 마약은 강력한 마취제로서 수면을 유발한다. 사실 잠이 든다면 운 좋은 경우다. 대부분은 눈을 감고 싶지만 사방이 빙빙 돌아 메스꺼움을 느낀다. 그래서 눈을 뜨고 있으려 애쓰지만 잠이 쏟아져 그렇게 하기도 불가능하다.
• 나중에 깨어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탈수된 뇌를 통과하는 혈액의 충격 때문이다.
• 트럭에 치인 듯 온몸이 얼얼하고 쑤신다.
• 이 마약의 효과가 사라지는 데는 최소한 3일이 걸린다.


반면 술의 장점은 "전혀 없다'라고 말한다. 단점만 있고 장점만 없다면 끊는 것이 타당한 결론일 것이다.


그는 금주가 어려운 것은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술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중독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술을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한, 금주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금주를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 과정'으로 재정의 한다. 술을 끊었을 때 얻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동기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우선 신체적으로는 숙취 없는 아침, 깊고 편안한 잠, 에너지 증가, 체중 감소, 피부 개선 등 몸이 회복되면서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들을 언급했다. 정신적으로도 더 이상 술 마실 계획을 세우거나, 술 마신 다음 날 후회와 불안에 시달릴 필요가 없으며, 이를 '정신적 감옥'에서의 해방이라고 표현하였다.


무엇보다 술기운을 빌리지 않고도 사람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힘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삶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진정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술을 완전히 끊기가 어렵지 않으며, 다음의 세 가지 비결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1.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2. 방에 틀어박혀 침울하게 지내지 마라. 새로 얻은 자유를 자축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즐겨라.

3. 술을 끊은 다음 첫 주 동안은 활력을 주는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결단하라
2. 금주로 포기할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라
3. “난 이제 술을 마시면 안 돼”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4. 술 생각을 하라
5. (우리 사회가 일컫는) ‘알코홀릭’이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6. 우울해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새로 얻은 자유를 만끽하라
7. 술을 끊은 일수를 세지 마라
8. 술의 유혹이 두렵다 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피해선 안 된다
9. “딱 한 잔만!”은 금물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10. 술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생각을 버려라
11. 음주자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가엾게 여겨라
12. 이 방법이 항시적 안전망은 아니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술에 대한 생각이 바뀌도록 유도하였다. '술을 끊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자발적인 마음이 들도록 한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책을 읽는 동안에는 평소처럼 술을 마시라"고 권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읽기 직전에 '마지막 술'을 마시며, 그것이 주는 진짜 느낌(불쾌한 맛, 졸음, 다음 날의 숙취 등)을 똑바로 마주하라"라고 한다. 그 마지막 술을 통해 술과 결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렇듯 제이슨 베일은 이 책을 통해 술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관심을 바꾸며 금주에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고자 하였으나 그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의 희망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은 너무 산만하고 요점이 없다. 책의 내용을 간추리면 위에서 언급한 것이 사실상 전부인데, 사변과 잡다한 살을 덧붙여, 비슷한 말을 계속 반복해 가며 억지로 300 페이지 이상으로 늘린 듯한 인상을 준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하지만, 이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가독성도 떨어지며,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솔직히, 저자가 술 마시고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말에 '과연 이 사람이 칼럼니스트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내 경우에는 이미 금주를 하고 있기에 저자가 하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지만, 술에 대해 관용적인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을 만큼의 파급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 역시 모든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금주하리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몇 사람만이라도 금주에 성공하고, 그리고 사회에 약간이나마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족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을 내세울 때는 좀 더 잘 다듬어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저자의 과욕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구성과 필력이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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