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어문규범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이번 학기 내내 애를 먹고 있는 <한국어어문규범> 과목. 이번 주가 중간고사라 시험공부를 해야 하지만 자신이 없다. 얼마 전에 봤던 '띄어쓰기' 퀴즈에서 나는 겨우 정답률 50%를 넘겨서 그럴 수도 있다. 퀴즈를 풀 때는 최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골랐지만, 정답을 빗겨 나갔다. 정답을 보면 당연히 그게 답이라 생각하지만, 보기가 여러 개면 혼동이 된다.
이것도 성적에 반영되는 것이라 이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어렵겠다. 어차피 마지막 학기라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쉽다.
한국어 어문규범 중에서도 띄어쓰기는 특히 악명이 높은데, 애당초 띄어쓰기가 국어에 있던 것이 아니라 띄어쓰기 시작한 지 겨우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띄어쓰기가 정립된 것이 40여 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한글 맞춤법"에서 띄어쓰기에 대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이중 제2항은 "제1장 총칙"에 있고, 제41항~제50항은 "제5장 띄어쓰기"로 따로 구분되어 있다.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제42항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제43항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
제44항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
제45항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다음의 말들은 띄어 쓴다.
제46항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제47항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제48항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쓴다.
제49항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어 쓸 수 있다.
제50항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위의 규정만 보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적용으로 들어가면 한국어 문법의 난제들이 들고일어난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단어인가?' 하는 것이다. '단어'는 어렴풋하게 짐작하지만, 한국어 문법에서 단어의 정의는 간단하지 않다. ('단어'와 '구'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
게다가 조사는 단어이지만 의존형태소라서 앞말에 붙여 쓴다. 또한 조사는 격조사, 보조사, 접속조사 등등 용법에 따라 구분되고, 조사와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관형사 등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띄어쓰기도 달라진다.
가장 헷갈리게 하는 것은 '의존명사인가 접미사인가?', '관형사인가 접두사인가?', '합성어인가 구인가?', '조사인가 어미인가?'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띄어쓰기가 더 어렵고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까지 라면 어떻게든 해 보겠지만, 관용적인 경우나 합성어의 경우에는 붙여 써야 하는 것도 있고, 허용에서도 예외가 또 있다. 다중 범주나 의미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지는 것도 있다. 이렇게 혼동되는 것들이 시험 문제로 내기에 딱 좋은 것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게 한국어 어문규범의 문제인가, 이해를 못 하는 내가 문제인가 싶다.
나도 평소 한국어 문법이나 맞춤법, 띄어쓰기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틀리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더 확실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 그래야 하는 것. 오죽하면 영어가 더 쉽다고 할까.
그러나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회의도 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막 써도 의미가 통하고 소통은 되는 것을. 그러니 국어학자 중에도 띄어쓰기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한글 맞춤법은 1988년 이후로 그대로 써오고 있고, 소소하게 변경은 있었지만 원칙의 변화는 없었다. 물론 그 이전에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 같은 사람이야 변명거리가 있다고 해도 농담거리일 뿐이다. 이 또한 세대가 문제는 아니다. 그냥, 제대로 배우려는 노력이 없었고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
그렇다고 세종대왕을 원망하지는 말자. 어차피 그 당시는 물론 조선시대에는 띄어쓰기나 한글 맞춤법도 없었고, 훈민정음은 그 용도도 아니었다.
p.s. 띄어쓰기만 해도 이 정도인데, 맞춤법으로 들어가면 더 가관이다. 그나마 내가 한국인이라 평소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