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니킴 Oct 03. 2022

폭식이라는 일상의 불협화음에 대처하는 자세

폭식을 하면 좋을 게 없죠.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 폭식이라는 행동이 봉인해제 되나요? 

6개월 넘게 작성한 식단일기에서 저의 폭식 패턴을 살펴보니 저는 보통 3가지 경우에 폭식을 하더라고요. 


1) 월말 생리전 호르몬의 영향을 받았을 때
2) 업무,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심리적인 압박을 받을 때
3) 강박적으로 식이 조절을 하다 외부 자극에 의해 무너질 때


식단일기를 보며 발견한 저의 폭식 스타일(?)이 또 있습니다. 


한번 폭식을 시작하면 1일차에서 끝나지 않더라고요. 보통 저녁 식사 때 폭주하기 시작해 야식, 간식을 다 먹은 다음 부른 배를 못 이겨 잠에 듭니다. 


장기들이 제가 우겨넣은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밤새 야근(?)을 하면 다음 날 아침은 몸이 너무 무겁고, 피곤합니다. 얼굴이 누렇게 떠서 푸석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폭식을 하면 배변 활동이 더 활발해질 것 같지만, 갑자기 너무 많은 음식을 섭취해 오히려 소화 활동이 더뎌지고 변비가 생깁니다. 처리할 일이 밀려들며 대사 활동에 병목이 생기는 바람에 변을 빨리 내보내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집니다. 

이렇게까지 폭식을 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자기혐오감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 


폭식의 질주가 시작됐을 때 가장 괴로운 건 허기가 없어지는 겁니다. 


폭식이 시작된 시점부터 끼니 때 마다 찾아오던 적당히 기분좋은 시장기가 사라집니다. 속이 더부룩한 상태로 동료들과 함께 해야하는 점심 식사는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이전의 폭식으로 인해 신체 내 잉여 에너지와 칼로리가 많이 쌓였다면 공복을 느낄 수 있는 신체 상태를 회복하기까지 최대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후에 다시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더라도 1보 전진, 2보 후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거죠. 


다년간의 다이어트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겪으며 제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폭식은 해도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폭식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폭식을 하고 난 이후 나를 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간만에 잡힌 삼겹살 회식 자리에서 잘 구워진 고기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도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외식 약속 앞에선 조금은 내려놓고 즐겨도 큰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있고 난 다음 날, 어제 내가 먹은 음식과 술을 곱씹으며 마음의 부채는 쌓지 마세요. 


몸이 찌뿌둥하더라도 일어나서 물을 많이 마시고, 가볍게 동네를 걷는 해장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치맥하고 난 다음날 아침을 굳이 거르지 마세요.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잘 익은 완숙 토마토를 사서 다음 날 한입 베어물면서 아침을 시작해보세요. 


폭식은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내 계획에 없었던 약속이 연달아 잡히며 폭식을 하게 되는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할 때 모든 상황이 내 계획에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스트레스 받지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모든 상황이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게 부자연스러운거예요. 


우리가 폭식을 했을 때 폭식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왜 내가 음식을 못 즐기고 폭식했을까 마음을 짚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목표를 앞에 두고 달려가며 나의 신체를 너무 몰아붙인 것은 아닐까요? 한 주 내내 무리하게 식단 조절을 하다가 치킨 한 조각에 무너졌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심심하던 찰나에 마침 집에 과자가 있어서 다 먹어버린 건 아닐까요? 


어떤 심리적인 요인이 나로 하여금 음식이라는 트리거 앞에서 나를 폭식으로 이끌었을 겁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가장 중요한 건 폭식한 날이 아니라, 폭식한 다음 날 나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폭식한 다음 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전날의 나를 혐오하지 않고 그대로 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지금 좀 몸이 무겁고 불쾌감이 엄습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폭식이라는 불협화음으로 몸과 마음의 리듬이 깨졌을 땐 천천히 다시 음표를 짚어가며 나의 신체 리듬을 되찾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슬며시 자리잡는 끼니 때의 공복감을 반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음식을 즐기면 됩니다. 


폭식이 찾아올 때마다 나를 잘 다독이며 일상의 리듬만 잘 회복한다면 사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음을 깨달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계속 노력 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단일지 쓸 때 하지 말아야할 것 세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