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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연 Feb 10. 2016

안아주고 싶은 인공지능 '그녀(her)'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그녀(her)', 2014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라 할 수 있다. 누구보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존재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해도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기보다는 내 상황에 맞춰주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언제나 내가 원할 때마다 응답해주는 사람을 만나기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그녀(her)'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난해한 과제인 '관계', 그것도 남녀의 관계,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로 풀어나가고 있다.


만일 내 모든 것(감정, 정보, 스케쥴, 취향) 모두 알고 있는 인공지능(OS)이 있다면? 인공지능을 가진, 그것도 '스칼렛 요한슨'처럼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24시간 내내 내 곁에서 나와 공감해주는 여자라면?그런 여자(혹은 남자)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이게 완전히 황당한 얘기는 아니다. 최신 스마트폰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정확한 정보 뿐 아니라 황당한 질문에도 위트 있게 대답해주는 인공지능 기능이 있다. 스마트폰에 수 천 개의 대화 알고리즘을 입력해 두고 질문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내놓는 식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과 음성 기술이 진화하면 사람과 기기간의 소통이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고독하고도 이기적인 존재


이처럼 현대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고독해진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 삶의 커뮤니케이션을 점점 더 폐쇄적이고 가식적으로 만들고 가고 있다. 당장 우리가 번거로운 현실의 친구를 두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가상공간의 사람들과 더 교감하는 심리만 봐도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나를 이해해주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런지.


그녀(her)는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상당히 독창적인 데뷔작을 가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연출한 네 번째 장편 영화이다


그가 10년 전쯤 뉴스를 통해서 인공지능과 채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근미래에 훨씬 발전된 '사만다'와 같은 고유의 인격을 가진 인공 체제와 대화는 상상을 한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테오도르'는 왼쪽 셔츠 주머니에 카메라를 켠 채로 사만다에게 세상을 보여주며 이어폰을 낀 채로 해변 데이트를 즐긴다


처음에는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연애를 한다니 무슨 황당한 SF 영화인가 싶었다. 아무리 외로워도 그렇지 사람이 아닌 OS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라니 누구라도 황당하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하긴 PC통신이나 채팅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간과 OS는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


주인공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역)는  손글씨로 타인의 편지를 대신 멋지게 써주는 대필 작가가 직업인 ) 1년 전 이혼한 아내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 그가 새로 산 운영체제(OS)속에서 따뜻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단숨에 그의 하드웨어를 훑어보고 이메일을 정리해주고 스케줄을 알려주고, 심지어 자신의 대필 편지를 출판사에 보내 책까지 내게 해준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밤에 잠들 때까지 항상 나를 지켜봐주고 외로우면 밤새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준다.

'테오도르'는 왼쪽 셔츠 주머니에 카메라를 켠 채로 사만다에게 세상을 보여주며 이어폰을 낀 채로 해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사만다'는 이런 그를 위해 서로가 깊이 교감하는 순간마다 음악을 작곡해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으로 꼽고 싶다.)  


심지어 목소리만으로 절정에 이르게 해 주고, 물리적인 접촉을 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젊은 여성을 구한 뒤 자신을 대신해 섹스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둘은 그 어떤 신체적 접촉보다 밀도 높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며,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을 점점 키워 나간다.


매일매일 무섭게 진화하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사람인 '테오도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만다'는 자신이 8천 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으며,  그중에 641명과 사랑에 빠져있다고 대답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이 영화는 묻는다.  


누군가랑 사랑할 때, 상대방이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런 변화와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나 역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서로가 변화하는데도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her)'는 마치 미래 어느 도시인듯한 환상적인 배경, 컬러풀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감각적 영상, 아름다운 배경 음악, 배우들의 인상적인 열연으로 내게 2014년 가장 멋진 사랑 영화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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