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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쫄깃한 리뷰 Jan 11. 2022

뒷북 리뷰: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살아가야만 한다.

<바람이 분다의 영화포스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뽑으라면, 단연코 이 영화 <바람이 분다> 일 것이다. 영화 <바람이 분다>는 1920년~1940년대 즈음의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동대지진, 2차 세계대전 등이 굵직한 역사들 사이의 이 영화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가 서있다.


호리코시 지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짧고 굵직하게 활약한 전투기 '제로센'의 아버지이다. 영화는 제로센을 만들기까지의 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화의 모습을 그려내진 않았다. 영화 제목 <바람이 분다>와 동명인 호리 타츠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의 모습을 뒤섞어내 보여준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지로는 어렸을 적부터 비행기광이었다. 해외에서 어렵사리 구한 비행기 잡지를 어렵게 읽는 소년 지로는 그 날 꿈에서 카프로니 백작을 만난다. 카프로니 백작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지로의 모델이다. 지로와 카프로니 백작은 꿈을 공유하는 사이이다. 멋진 비행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그들의 꿈이다. <바람이 분다>에서는 이 둘 이외에도 비행기 제작이 꿈인 사람들이 있다. 지로의 친구 혼조 기로, 독일의 후고 융커스가 그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의 꿈은 철저하게 이용당한다. 혼란의 세계, 비행기는 카프로니 백작의 바람처럼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용도로 이용되지 않는다. 승객 대신 기관총을, 폭탄을 싣고 죽음을 싣고 다닌다. 카프로니 백작은 비행기 제작의 선배로서 지로보다 먼저 현실의 좌절감을 겪은 사람이다.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자신의 바람대로 이용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비행기를 제작하기로 한다. 독일의 융커스 박사는 나치의 협조를 거부한 혐의로 가택연금을 당하고 만다.


융커스 박사와 카프로니 백작과 달리 지로와 기로는 영화 내의 그러한 고민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기로 같은 경우는 오히려 전투기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의 처지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대사를 하기도 한다. 지로 역시 비행기 연구 모임에서 기관총 때문에 비행기가 영향을 미친다는 쓴 농담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외의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결과의 고민은 담아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영화가 전쟁을 미화하거나, 전쟁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쟁과 전범국들이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암시한다. 또한 군인들과의 회의, 회사의 도움을 받아 경찰로부터 숨는 모습의 지로의 대사 등을 통해 당시 군국주의 사회 모습을 비판하기도 한다. 지로의 꿈은 결국 당시 사회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다. "단 한 대도 돌아오지 않았다."라는 그의 후반부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일생을 바친 그의 꿈은 먼바다에서 파편이 되고 말았다. 


꿈이 산산조각 난 그에게 일찍 요절한 그의 아내(나오코)는 그에게 "살으세요" 라고 말한다. <바람이 분다>의 바람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람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가야만 한다."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바람은 사람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은 존재다. 영화에서 바람은 관동대지진처럼 천재지변일 수도, 2차 세계대전과 군국주의 사회와 같은 인류가 만든 인재(人災)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가야만 하고, 개인은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일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가야만 한다."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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