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읽었겠거니’ 하는 책들이 있다. 1984라던가, 신세계 라던가 하는 ‘서울대 청소년 추천 도서 100’과 같은 이름들에 들어갈만한 책들. 나의 경우 1984는 읽었지만, 신세계는 아직 읽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책 중, 아직까지도 '조만간 꼭 읽어야지' 라는 책은 당연히 ‘달과 6펜스’이다. 고갱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는데, 내용과는 별개로 어린 시절부터 책장 한 켠에 꽂혀있던 기억 저 너머의 책이기 때문이다. 몇 살인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때의 나는 몹시 어렸는데, 아마도 방구석에서 TV를 보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이 없던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청소를 한다고 하면 TV가 있는 거실(이라 부르는 큰 방)에서 나와 건너편에 있는 작디 작은, 책장 하나만 달랑 있는 방으로 건너가 누워있곤 했다.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는 먼지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유난히 잘 보였다. 무지개 빛을 내며 떨어지는 먼지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책장으로 눈이 갔는데, 그 때마다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 ‘달과 6펜스’ 였던 것이다. 좁디 좁은 작은 방에서 왜 달이고 왜 6펜스일까 둘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를 몇 년동안이나 궁금해했지만, 먼지 덮힌 책장의 유리 손잡이를 잡아당길만큼 궁금하진 않았던 탓에 매번 풀리지 않는 한시적인 의문을 지닌 체 살았다. 성인이 되고, TV보다 책이 마음 편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누군가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숨어있던 기억 속의 물건이 나를 다시 일깨웠다.
어쩐지 번역체와 만연체로 구성되어 있을 것 같은 그 책은 이미 꿈 속에서는 여러 차례 들쳐 보았고,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았다. 나는 그 책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라는 생각은 과거의 나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당시 불행했는가. 불안했는가. 나의 부모는 불행하게 보였는가. 나는 무엇을 그리워 하는 것인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제빵사의 손을 그리워 하는가. 어느 지방 도서관의 사서가 되고 싶었지만 아들을 작은 방에 넣어두고 TV 위 덮인 먼지를 닦고 있는 손을 그리워 하는가. 달과 6펜스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그 책이 그 곳에 꽂히게 된 경위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어쩌다 그 책이 그 곳에 꽂히게 되었는지 지독히 알고 싶다. 이번 주말은 아무래도 달과 6펜스를 읽으러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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