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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향기 May 22. 2024

달과 6펜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읽었겠거니’ 하는 책들이 있다. 1984라던가, 신세계 라던가 하는 ‘서울대 청소년 추천 도서 100’과 같은 이름들에 들어갈만한 책들. 나의 경우 1984는 읽었지만, 신세계는 아직 읽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책 중, 아직까지도 '조만간 꼭 읽어야지' 라는 책은 당연히 ‘달과 6펜스’이다. 고갱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는데, 내용과는 별개로 어린 시절부터 책장 한 켠에 꽂혀있던 기억 저 너머의 책이기 때문이다. 몇 살인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그 때의 나는 몹시 어렸는데, 아마도 방구석에서 TV를 보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이 없던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청소를 한다고 하면 TV가 있는 거실(이라 부르는 큰 방)에서 나와 건너편에 있는 작디 작은, 책장 하나만 달랑 있는 방으로 건너가 누워있곤 했다.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는 먼지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유난히 잘 보였다. 무지개 빛을 내며 떨어지는 먼지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책장으로 눈이 갔는데, 그 때마다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 ‘달과 6펜스’ 였던 것이다. 좁디 좁은 작은 방에서 왜 달이고 왜 6펜스일까 둘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를 몇 년동안이나 궁금해했지만, 먼지 덮힌 책장의 유리 손잡이를 잡아당길만큼 궁금하진 않았던 탓에 매번 풀리지 않는 한시적인 의문을 지닌 체 살았다. 성인이 되고, TV보다 책이 마음 편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누군가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숨어있던 기억 속의 물건이 나를 다시 일깨웠다.

 어쩐지 번역체와 만연체로 구성되어 있을 것 같은 그 책은 이미 꿈 속에서는 여러 차례 들쳐 보았고,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았다. 나는 그 책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라는 생각은 과거의 나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당시 불행했는가. 불안했는가. 나의 부모는 불행하게 보였는가. 나는 무엇을 그리워 하는 것인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제빵사의 손을 그리워 하는가. 어느 지방 도서관의 사서가 되고 싶었지만 아들을 작은 방에 넣어두고 TV 위 덮인 먼지를 닦고 있는 손을 그리워 하는가. 달과 6펜스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그 책이 그 곳에 꽂히게 된 경위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어쩌다 그 책이 그 곳에 꽂히게 되었는지 지독히 알고 싶다. 이번 주말은 아무래도 달과 6펜스를 읽으러 가야 할 것 같다.


Instagram: @whyang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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