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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향기 Aug 13. 2024

어떤 알리오 올리오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1 나의 알리오 올리오


 스스로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 그것도 스스로 납득할만한 수준의 무엇인가를 만들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가령 괜찮은 시 한 편을 쓴다거나, 감칠맛 나는 한 그릇의 김치볶음밥을 만든다거나, 멋들어진 인물화를 그리거나, 높은 수준의 실력으로 기타 연주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 그 모든 것들에는 멋과 보람이 들 때까지 어느 정도 숙성의 시간을 요한다.


 남들이 평가하지 않아서 상처받을 염려가 없는 것들. 나 자신만 만족해도 충분한 것들. ‘결국 남의 시선 때문에’라는 문장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것들을 찾고 있었다. 소소한 성취감을 느껴봄으로써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게 하는 것들을. 취업으로부터, 연인과의 이별로부터, 먹고사니즘과 같이 진부한 문제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자신과 잠시 멀어지고 싶었다. 이전과는 다른, 실패하는 내가 아닌 '성공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를 새롭게 만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것들을 도처에 구비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요리였다. 요리는 다른 것에 비해 가장 빠른 결과물을 내놓을 것 같았고, 꾸준히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패해도 내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줄 것들이 주변에 널려있었다. 라면수프라던가 치킨스톡이라던가 하는 것들. 먹고 나면 곧장 포만감이 느껴져서 좋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그저 '요리하는 나 자신'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어떤 요리를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파스타와는 거리가 먼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스타=스파게티’였고, ‘스파게티= 토마토소스’였다. 적당히 낯설면서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했고 적당한 가격이었으면 했다. 당황하지 않은 척 에스프레소를 시키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할까. 개중에서도 알리오 올리오가 눈에 띄었다. 마늘만 있으면 되는 파스타라니! 선을 몇 개 쓰지 않은 그림이 가장 까다로운 것처럼, 재료를 몇 개 쓰지 않은 음식이 진정한 실력을 드러내주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가 깔려있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는 여러 알리오 올리오 레시피들이 자신의 방식이 가장 맛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물을 올린다.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동안 마늘을 썰어둔다. 마늘이 적당히 큰 게 좋아서 큼직하게 썬다. 페퍼론치노도 한쪽에 준비해 준다. 혹시라도 베이컨이 있다면 큼직하게 잘라서 한쪽에 준비해 둔다. 베이컨은 쪼그라드니 생각보다 크게 썰어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과 소금을 왕창 넣고 휴대폰으로 8분 알림을 맞춰둔다. 8분이라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소금, 후추, 치킨스톡 조금을 챙겨둔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프라이팬을 달궈준다. 올리브유를 넉넉히 넣고 소금을 충분히 넣은 후 마늘을 약불에서 튀기듯 익혀준다. 적당히 익으면 프라이팬 한 쪽에 마늘을 쌓아두고 나머지 공간에 베이컨을 익혀준다. 베이컨이 다 익으면 잠시 불을 꺼둔다. 프라이팬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다. 면을 익히는 8분이 지날 때까지. 종종 프라이팬 작업이 더 걸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그냥 면을 삶고 있는 냄비의 불을 끄고 면을 건져놓으면 된다. 면도 어느 정도 익었고, 프라이팬 작업(마늘, 베이컨)이 끝났다면 이제 그냥 둘을 합치면 된다. 면수를 4 국자 정도 충분히 넣고 후추(많이), 치킨스톡(쪼끔), 준비해 둔 페퍼론치노(근데 이제 손으로 잘게 쪼갠)를 넣는다. 이제 마늘, 베이컨, 면이 잘 합쳐지면서 충분히 익길 바라며 센 불에 중화요리하듯 계속 엎치락뒤치락해 주면 된다.


 처음 알리오올리오를 만들 때의 내가 이 글을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인터넷에 널려있는 알리오올리오 레시피는 온통 마늘만 넣으라는 조언 투성이었다. '소금을 생각보다 많이 넣으세요' 라든가,  '치킨스톡 쪼끔은 필수입니다' 라든가, '후추는 다다익선이에요' 라든가 하는 것들은 어디에도 없었고, '조금 심심하지만 맛있었어요'라는 뒤늦은 위로 같은 감상평 밖에 없었다.


 다진 마늘을 썼다가 편마늘을 써보고 둘 다 같이 넣어보고 페퍼론치노 대신 청양고추를 써보고 올리브유의 양을 조절해 보고 면을 익히는 시간을 다르게 해 보고 새우를 넣어보고 베이컨을 넣어보고 소금의 양을 조절하고 면수의 양을 조절하고. 어떤 날은 면 조절 실패로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전부 버리는 날도 있었다. 스스로가 더 나아지기 위한, 숙성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프라이팬을 달구기 전의 '실패했던 나'와는 다른, 어찌 됐던 매 과정들의 결론은 멋들어진 한 그릇의 파스타였다. 먹고 나면 '그래도 오늘은 파스타라도 했구나' 하며 일기장에 사진 한 장을 올릴 수 있는 성공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2 어떤 알리오 올리오


 언젠가부터 파스타를 먹으러 갈 때 가장 먼저 알리오 올리오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재료를 가장 적게 쓰는 음식이 맛있으면 나머지 음식들도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 기대는 실제로 유효하게 동작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나와 가볍게 한 끼를 때울 요량이었다. 피자를 파는 곳이 눈에 걸렸다. 체구가 작은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자그마한 가게였다. 혼자도 가능한가요 라는 질문과 동시에 메뉴판에 알리오 올리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뒤로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어떻게 주문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리오 올리오만 두 그릇째 시킨 뒤였고, 사장님이 오래 일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집에 가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그 집의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를 먹는 것이 큰 행복으로 자리 잡았다. 계속 더 씹고 싶어지는 면의 식감,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적당한 간. 무엇보다 몇 개 들어가 있지도 않은 마늘 몇 쪽이 나를 더 안달 나게 했다. 매번 먹으면서 ‘어떻게 이런 맛을 냈지’, ‘이 정도 마늘 양으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 번은 두 그릇을 다 먹어치운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며 혹시 레시피 좀 알 수 있을까요 라는 말을 건넸다.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문장이었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은 듯 나쁜 듯 애매한 표정으로 ‘그건 좀..’이라며 말 끝을 흐리셨다. 계산을 끝내고 카드를 내미는 사장님의 팔목이 유난히 메말라 보였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회사일은 더 많아졌고, 그 가게는 잠시 기억에서 멀어졌다. 유난히 힘든 어느 날, 알리오 올리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가게를 다시 떠올렸다. 영업시간은 지났지만 다음날이면 먹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가게가 무사히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간판은 있었지만 가게 안은 비어있었다.



사장님, 그 옆집 말인데요 혹시 문 닫았나요. 아 그 집 문 닫았어. 문 닫은 지 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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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하는가.

일상을 사랑하는가.

도처에 흐트러져 있는 나를 사랑하는가.

곳곳에 자리한 절망을, 희망을 사랑하는가.

알리오 올리오를 사랑하는가. 누군가의 알리오 올리오를 그리워하는가


네 계속 찾아 헤매는 중입니다.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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