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바람에
호두같이 굳어가던 지붕 위 호박을
똥물 묻힌 수숫대 화살로 쏘았던 그 날
나는 저주에 빠졌다
용마루에 낮잠 자던 귀신이
똥 냄새에 잠을 깨고는
푸수수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신발을 벗어 건넸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빨간색의 유혹에 그만..
신어버렸다
할머니는 내 얼굴에 소금을 뿌리고
나인지 귀신인지 죽어라 욕해가며
벗겨내려 애썼지만
신발 앞코숭이에선 벌써 푸른 발톱이 자라고 있었다
이후로 나는 멈출 수가 없었고
신발은 자꾸 밖으로만 향한다
열두 고개 넘어 마을을 벗어나던 날
낯익은 까마귀는 꺼이꺼이 울었고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빨간 신발은 자꾸만 나를
밖으로 밖으로 실어갔다
신발 바닥엔 간사한 눈이 있어
언제나 죽음을 밟지 않고 지났고
넓은 초원과 깊은 골짜기도 쉬이 건넜다
바람이 살을 파 먹고
흙이 영혼을 덮어 버리는 곳에서
나는 문득 강가에 다다랐다
어머니는 우시며
시퍼런 도끼로 내 발목을 잘랐고
파아란 피가 신발에 철철 넘쳐
발톱을 물들일 때
나는 마음은 어머니께 드리고
몸만 강을 건넜다
이놈의 신발은 아직도 멈출 줄을 모르고
가는 곳마다 파아란 혈무(血霧)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