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는 왜 한숨을 쉬었을까
포도 눈
세상이 구린 트림을 해대면
기억의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내 기억은 촛불처럼 짧아
추억에로의 기차는 경적을 울리고
뜨거운 촛불 눈물 한 방울에 추억 한 모금
그 속에 잠들어 있는 못다 쓴 일기 조각
천장에서 내려온 구렁이에 질겁했던 날
구렁이가 벗어놓은 황금빛 허물을 뒤집어쓰고
밤새 꿈을 헤맸다
돌 맞은 구렁이는 복숭아 나뭇가지에 걸려
짓이겨진 꼬리가 바람에 흔들흔들
사라진 눈 대신에 벌어진 입 사이로
눈물이 흐르고
끓는 쉬파리의 장송곡에는
감동이 흐르고
어느 아침 구렁이는 구더기로 화했고
그걸 탐식한 암탉은 털이 빠져 버리고
닭다리 뜯는 아저씨
그 대머리에서 자라나는 머리카락 한 오리
불어오는 실바람에
그 한 오리 뿌리째 뽑히고
포도나무 넝쿨에 사뿐히 내려앉아
늘어진 기지개를 해댄다
기지개 한 번에 조금씩 늘어나
손가락만큼, 다음엔 지팡이만큼
길쭉하던 몸뚱이가 비틀리고 꼬아질 때
아, 저것은 구렁이다
끝이 쩍 갈라지더니 시뻘건 입이 드러나
포도송이를 덥석 삼켜버린다
구렁이가 감고 있던 눈을 뜨니
아, 저것은 포도알이다
쉰한 개의 포도알
정 없는 눈알들이 천장에서 나를 노려보고
나는 설익은 포도 맛을 떠올리며
신 침을 삼켰다
까만 눈 두 개, 파란 눈 쉰한 개
가위는 내 입술을 잘근잘근 썰었고
구렁이는 내 눈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1초, 2초, 3초…
갑자기 구렁이 큰 입이 쩍 벌어지고
길게 하품한다
하품 뒤에 따라오는 큰 한숨, 한숨
휘파람, 휘파람
휘파람이 촛불을 꺼버렸다
나는 또 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음을
문득 깨닫고
삶의 숙제에 한탄한다
하나 어찌하리
촛불 눈물 식기 전에
그 속을 벗어나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