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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Jan 20. 2024

61. 거장의 모델이 된 여인들

엘렌 앙드레, 수잔 발라동, 빅토린 뫼랑


얼마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는 '마네-드가 특별전'이 열렸었다.

이 대단한 전시회의 포스터를 장식한 여인이 있었는데.

마네-드가 특별전 포스터

이번 특별전의  포스터를 장식한 여인은 인상파 화가들의 단골 모델로 영원히 명작에 남은 행운의 인물 중 한 명 '엘렌 앙드레(Ellen Andrée: 1856– 1933)'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이름이지만 작품 속의 그녀는 유명세만큼이나 친숙한 얼굴로 남아있다.

전시장에 비교 전시된 두 작품

왼편이 드가, 오른편이 마네가 그린 엘렌 앙드레의 모습이다.


두 작품 모두 파리의 삐걀 거리(66 Rue Pigalle)에 있던 'Café de la Nouvelle-Athènes'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2004년 화재로 소실된 카페지만 19세기말 인상주의를 이끌던 예술가들의 아지트 같았던 카페다.

앱상트,1876,드가,Musée d’Orsay(좌)/플럼 브랜디,1877, 마네,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우)

그림 속 그녀는 당시 예술가들이 즐겨 먹던 술 앱상트(Absinthe)와 플럼 브랜디를 앞에 놓고 초점을 잃은 시선과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의 주인공은 옆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누군가다.


이렇게 무표정한 표정으로 술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세팅은 도덕적 외설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당시 유행하던 패턴이었다고 한다.


드가의 절친이었던 이탈리아 인상주의 화가 페데리코 잔도메네기(Federigo Zandomeneghi:1841-1917)가 같은 카페에서 몽마르트르의 뮤즈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을 그린 그림도 있다. 

독특한 이탈리아 인상주의 화풍의 작품으로 역시 우리에게는 프랑스 인상주의 기법이 조금은 더 익숙한 듯하다. 1885년작이다.

At the Cafe De La Nouvelle Athenes,1885, Federigo Zandomeneghi

배우가 본업이었던 엘렌 앙드레지만 마네(Édouard Manet:1832-1883), 드가(Edgar Degas:1834-1917),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등 내로라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델 경력이 더 화려했던 여인이다.


르누아르의 '보트 파티의 오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에도 그녀의 모습이 남아 있는데 그림 가운데 모자를 쓰고 컵을 들고 있는 여인이 바로 엘렌 앙드레다.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르누아르,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거장들의 그림 속에는 그들이 선호했던 단골 모델들의 모습이 남아있어 어렵지 않게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에 다수 남은 수잔 발라동이라던가 마네 작품의 단골 모델 빅토린 뫼랑(Victorine-Louise Meurent:1844~1927)(https://brunch.co.kr/@cielbleu/270 참조)등 쟁쟁한 이름들이 모델 이상의 포스로 기억되곤 한다.

이런 모델들은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로 어떤 면으로는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몽마르트르의 수잔 발라동은 인상파 화가들 특히 르누아르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는데(1883년 수잔이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아이를 출산하자 르누아르와 그의 아내가 심한 부부 싸움을 했다고 한다. 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르누아르의 대표작인 ‘무도회’ 시리즈는 모두 3편인데 그중  'Dance in the Country'와 'Dance in the City'는 오르세 뮤지엄에, 'Dance at Bougival'은 보스턴의 Museum of Fine Arts에 소장되어 있다. 모두 1883년 작이다.


이중 'Dance at Bougival'과 'Dance in the City'의 모델이 바로 수잔 발라동이다. 

르누아르는 'Dance in the Country'에는 부인  얄린 샤리고(Aline Charigot:1859-1915)를 그려 넣었다. 

얄린 샤리고는 '보트 파티의 오찬'에서 왼쪽 맨 앞에 모자를 쓴 여인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오르세 뮤지엄의 무도회 두편(좌)과 부지발의 댄스(우)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녀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여성 최초로 ‘국립 예술 협회 (Société Nationale  des Beaux-Arts)’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대단한 여성이다.

베르트 모리조, 1872, 마네, Musee d'Orsay(마네가 그린 11편의 모리조 초상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메리 카사트, 1880-1884, 드가,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1841-1895)나 메리 카사트(Mary Cassatt:1844-1926)등 여건이 좋은 여류 화가들도 있었지만 당시 프랑스의 미술계는 그 길을 가는 여성도 많지 않았고 여류 화가가 성공하기란 어려웠던 환경이었으니 서커스 곡예단 출신의 수잔 발라동의 성공은 대단하다 하겠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피카소, 드랭, 브라크 등이 참석하였다.


마네에게 길거리 캐스팅이 된 빅토린 뫼랑의 이력도 만만치 않은데 그녀는 마네의 여러 명작 속에 고고한 모습으로 때론 평범한 파리지엔느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역시 가장 화제작은 '잔디 위에서의 점심(Luncheon on the Grass,1863, musee d'orsay)'과 '올랭피아'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당돌한 눈빛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대작들이다. 

A Young Lady,1866, 마네,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Railway,1873, 마네, National Gallery of Art , Washington, D.C.(마네의 모델로서 마지막 작품이다)
Luncheon on the Grass,1863, 마네, Musée d'Orsay
Olympia,1863, 마네, Musee d'Orsay

빅토린 뫼랑은 마네의 모델일을 그만두고 직접 미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살롱전에서 마네를 능가하는 솜씨를 발휘하여 마네를 제치고 살롱전에 입상하기도 했다. 

대단한 모델들이 아닌가?


불행히도 그녀의 작품은 거의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엘렌 앙드레는 1878년 앙리 제르벡스(Henri Gervex:1852-1929)의 그림 '롤라(Rolla)'에서 과감한 포즈의 여주인공으로 그려져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앙리 제르벡스가 조르주 상드의 연인이기도 했던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t:1810-1857)가 쓴 5장에 이르는 '롤라'라는 시의 클라이맥스를 그려낸 작품이다.


내용은 'Rolla'라는 젊은 부르주아 남자 주인공(Jacques Rolla)이 나태하고 방탕한 삶을 살다 매춘으로 불행을 극복해 보려는 어린 소녀 마리를 만나지만 파산에 이른 자신의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죽음을 앞둔 롤라의 어두운 얼굴이 세상모르고 잠에 빠진 어린 매춘 소녀 마리의 하얀 나신과 대조를 이뤄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장면을 그려냈다. 


1878년 살롱전에서 그림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거부되자 파리의 개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는데 오히려 수많은 관람객이 찾아 대성공을 거두면서 파리에서 열렸던 개인전 가운데 가장 성공한 개인전이었다는 평까지 받았다고 한다.


Rolla, 1878, 앙리 제르백스, Musée des Beaux-Arts de Bordeaux

그런데 그림을 음란하다고 보는 이유가 모델의 나신 때문이 아니라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가지, 코르셋, 모자, 지팡이들이 의미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림 속 여인이 매춘부라는 확실한 증거를 그려 넣으라고 드가가 강력히 조언했다고 한다. 

역시 거장의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다.


알렉상드르 까바넬(Alexandre Cabanel:1823-1889)의 '비너스의 탄생(la naissance de vénus )'이다. 


1863년 살롱전에 전시되자마자 나폴레옹 3세가 그 자리에서 사버렸다는 바로 그 화제작 말이다.

The Birth of Venus ,1863, Alexandre Cabanel, Musee d'Orsay

앙리 제르벡스가 까바넬의 제자였다니 롤라의 엘렌 앙드레의 포즈를 보면서 비너스의 모습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지 싶다. 

그런데도 롤라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까바넬이 그린 것은 비너스,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신만을 나신으로 그릴 수 있다는 고전주의 영향이 아직은 강했기 때문이다.


엘렌 앙드레는 수잔 발라동이나 빅토린 뫼랑처럼 큰 화제를 남기진 않았지만 그녀의 본업인 배우에 충실한 삶을 살다 간 거장의 모델 중 한 명으로 남아있다.


대가들의 명작 속에 남은 이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자신들을 그려준 작가들보다 관람객들에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사진 기술이 덜 발달된 시대에 자신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그려줄 대가들을 만난 건 그들의 큰 행운이었음이 확실하다. 


당시에는 화가들 앞에 포즈를 취하면서 오늘의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는 삶의 수단으로 누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캔버스 앞에 포즈를 취했을 그들에게는 먼 미래를 상상해 보는 여유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그들의 행운이 오늘따라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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