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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Apr 12. 2024

65. 마네를 만나고 베스퍼를 마시다

제임스 본드처럼

런던의 예쁜(?) 갤러리 코톨드(Courtauld Gallery).

런던의 내로라하는 대형 박물관들이 무료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  방문하게 되는 미술관이다.


마네의 마지막 대작인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ère) 술집'을 비롯 주옥같은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코톨드 갤러리의 시그니처 나선형 계단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2, Édouard Manet, Courtauld Gallery

그림의 배경인 '폴리 베르제르'는 19세기말 카바레 겸 뮤직홀로 오픈한 사교클럽으로 현재도 영업 중인 파리의 옛 명소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멀지 않은 파리 9구( 9th Arrondissement)에 위치한 이곳은 파리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인 1890년부터 1920년대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유명 장소였다. 


마네도 물랑루주의 로트레크처럼 이 극장의 한편에서 스케치를 하곤 했다고 한다.

현재의 '폴리 베르제르' 외관과 내부 객석


이 작품의 모델은 실제 폴리 베르제르의 여종업원 '수종(Suzon)'이라는 여인이다.


엘렌 앙드레, 빅토린 뫼랑(https://brunch.co.kr/@cielbleu/295 참고)처럼 여러 작품의 모델이 된 건 아니지만 마네의 대표 작품 속 여인으로 영원히 남는 행운(?)을 가진 또 한 명의 여인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의 표정이 압권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붙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우리가 요즘 쓰는 기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거 같은 그녀의 표정에서 보는 이도 '얼음'이 돼버린다.


주변의 소란과 혼잡함과는 무관하다는 표정으로 초점도 정확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녀.


그런 그녀를 응시하다 보면 어느새 그녀와 같이 멍 때리기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복잡하고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멀어질 수 있는 경험을 그녀와 함께 하게 되는 묘한 그림이다. 


오른쪽에 그려진 그녀의 뒷모습과 남성의 모습을 볼 때 그림의 구성이 잘못되었다, 그녀 앞에 놓인 꽃이 의미하는 것이 비너스와 순결이라는 등 여러 복잡하고 분석적인 감상을 떠나 그냥 있는 그대로 그림 속에 빠져 들고 싶은 작품이다.


그러다 그녀 앞에 놓인 여러 종류의 술병들에 시선이 멈춘다.

금박을 입힌 술병들은 아마도 샴페인 일거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얼음 땡'이 된다.


아무려면 어떠냐.

 

코톨드를 나와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쪽으로 걸음을 옮겨 찾아가는 곳엔 유명한 마티니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제임스 본드가 사랑한 마티니


그곳에는 런던의 자그마한 부티크 호텔 듀크(The Dukes Hotel)가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다이애나 비도 이곳에 전용 애프터 눈 티 테이블을 가지고 있었다는 듀크 호텔.


이 호텔에는 '007 제임스 본드'의 저자 '이안 플레밍(Ian Fleming:1908-1964)'이 단골로 다니던 '듀크 바'가 있다.

듀크 호텔 전경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듀크의 Drawing Room(듀크 홈페이지)

'흔들어요. 젓지 말고'

우리말로 하니 감이 잘 안 산다. 

원래대로.

‘shaken, not stirred’.

슬며시 미소 짓는 분들도 있겠다. 


007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서 마티니를 주문할 때 늘 하던 대사다.

사실은 저자 이안 플레밍이 즐겨 먹던 드라이 마티니 주조법이다.

듀크 바(듀크 홈페이지)
듀크 바의 칵테일 카트

shake냐? stir냐?

칵테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어느 것이 더 마티니의 맛을 높이느냐 의견이 분분하다던데 그 분야 전문가도 아니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 번쯤 제임스 본드처럼 그냥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는 듀크 바의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본드 마티니는 아예 본드걸 베스퍼 린드(Vesper Lynd)의 이름을 따서 '베스퍼'라고 부른다.

 

소설 속의 그녀는 이중첩자로 본드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하는 비운의 본드 걸이었다. 

본드는 그녀의 죽음에 매우 냉담함을 보이지만 후에 매년 그녀의 무덤을 찾았던 것으로 그려져 묘한 여운을 남겼으니 본드의 마티니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베스퍼'를 주문하면 듀크의 바텐더들은 아주 반겨하며 정성스럽게 칵테일을 준비해 준다. 긴 설명과 함께.

최고를 알아주는 이에 대한 자부심의 표시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대작 속의 여 주인공 수종(Suzon)과의 만남의 여운이 가시기 전 베스퍼 한 잔.

멋진 작품 감상의 마무리로 누려보는 호사다.

듀크의 시그니처 칵테일 베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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