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외할머니를 만나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나는 그 해 봄방학 기간 중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지하철을 한 시간도 넘게 타고 나서 마을버스 같은 것으로 또 갈아타고 해서 도착한 그곳은 마을 사람들이 매일 아침 나와서 골목을 쓸고 또 쓸고 하는 그런 동네였다. 우리가 전에 살던 경기도 아파트 근처는 집도 별로 없고 상가도 드문드문 있을 뿐이어서 굉장히 황량해 보였는데, 외할머니네 집이 있는 그 동네는 시멘트 바닥이 곱게 깔려 있고, 집집마다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같은 것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외할아버지네는 만화에서나 보던 초록색 세모 지붕을 얹고 하얗게 페인트칠을 한 커다란 이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키가 엄청나게 큰 대추나무와 조그마한 감나무가 있었고, 텃밭에는 갖가지 화초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이층에는 조그마한 발코니가 반원 모양으로 볼록 튀어나와 있었고, 세모 지붕 밑의 흰 벽 한가운데엔 격자무늬의 귀여운 창문도 달려 있었다. 후에 그 집을 포함한 외할아버지의 땅은 새아빠의 미숙한 투자로 헐값에 팔려버렸지만, 어쨌든 당시 어린 나에게 그 집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꿈의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어둑한 거실로 들어선 동생은 언제나처럼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는 새아빠의 바지자락만 붙들고 있었다. 흰 면 타이즈를 신은 두 다리가 너무나 가늘어서 마치 학이나 갈매기의 다리 같아 보였다. 새아빠는 마을 버스정류장 앞의 꽃가게에서 산 화분을 들고서는 소파에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노기충천한 모습이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처럼 거실 나무 바닥을 뒤덮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야-덜 학교는?"
‘야덜’에서 ‘야’ 자를 특히 길게 늘이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할아버지가 첫마디를 꺼내자, 새아빠는 몹시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근처로 전학을 하려고요, 아버님."
외할아버지는 '쯧!' 하고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창가에 기대 놓인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는데, 다리가 내 동생 다리만큼이나 가늘어 보였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 동생의 손을 붙들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온통 나무로 된 그 집 거실은 벽도 나뭇결로 되어 있었는데, 그중 주방과 안방 사이의 벽면 가운데는 장식용으로 우묵하게 파여 있었다. 거기엔 어릴 적 내 볼을 아플 정도로 빨아들이면서 뽀뽀를 하던 막내외삼촌과 그의 가족들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 있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함께 어색하게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한편엔 외할아버지 예순 기념잔치 사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꽃분홍색의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앞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내린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맨 오른쪽 윗줄에서 매우 불행한 표정을 짓고서 고개를 옆으로 약간 기울인 채 힘없이 서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그날도 엄마는 가족 중 가장 불쌍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외할아버지는 친아빠를 몹시 싫어해서 늘 어떻게 하면 당신의 딸과 떼어놓을 수 있을까 궁리했다. 물론 결혼도 결사반대했다. 어찌어찌 둘이 결혼을 한 후에는 엄마를 자식 취급도 하지 않았다. 결혼 전 고명딸로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엄마가 입에 올리기도 남부끄러운 천하의 몹쓸 불효자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 예순 기념잔칫날이었던 그날 역시도 엄마는 찬밥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내가 울기 시작하면 동생은 더 서럽게 울어댈 것이 뻔했기 때문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구야, 야덜 벌써 왔냐?"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얼굴이 뽀얗고 반들거리는 외할머니가 두 손에 불룩한 비닐봉지들을 가득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외할머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가득 머금고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는데, 그 표정은 까만 눈을 한 개구쟁이 어린애 같았다. 우리가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나자, 외할머니는 그랴- 하면서 우리의 손을 하나씩 붙들고 주방 옆에 붙은 뒷방 문을 열었다. 그것은 아주 아담한 방이었는데, 창문 두 개가 달려있고, 벽 한쪽에 크고 반짝이는 갈색의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괴물처럼 앉아있던 소파와 똑같이 먹음직스러운 초콜릿색의 피아노여서, 나는 문득 내가 더 꼬맹이였을 적에 큰외삼촌이 해외에서 사다 주곤 했던 허쉬 초콜릿을 떠올렸다. 커다란 종이봉투에 빨랫비누 모양의 초콜릿 덩어리, 캐러멜이 든 초코바, 구슬 모양에 색색의 옷을 입은 초콜릿들, 초코 크림이 든 비스킷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엄마는 그 커다란 종이봉투 두 개를 팔 한가득 안고 들어와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우리는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밤을 새워가며 내일은 어떤 초콜릿을 먼저 먹을까 군침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 아홉 살이나 먹었으니 좀 더 의젓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므로, 초콜릿을 먹고 싶다든가 하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동생은 피아노나 소파나 초콜릿 따위에는 애당초 관심도 없다는 듯, 이미 방구석의 오래된 TV 앞에 앉아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