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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나 Aug 23. 2023

산너울에 두둥실

3. 외할머니의 밥


  처음에 그곳은 끔찍했다. 억지로 세 끼 밥을 꼭꼭 다 챙겨 먹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끼니를 거르는 것이 무슨 충격적인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법석을 떨면서 하루 세 번 우리를 끌어다 앉혔다. 우리는 두꺼운 카펫이 깔린 거실에서 동그랗고 커다란 접이식 밥상 가득 반찬을 늘어놓고 식사를 했다. 나는 상 앞에 앉아 생선이니 나물이니 하는 것들을 대할 때마다 커다란 초콜릿과 빵 따위의 군것질 거리가 생각나 견딜 수가 없었지만, 동생은 나와 달리 조기나 굴비 같은 것을 한 마리씩 통째로 밥 위에 얹어놓고 참으로 잘도 발라 먹었다. 외할머니는 그것이 굉장히 대견스럽다는 듯이 자꾸만 반찬을 얹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입맛에 맞지 않는 그 반찬들에는 도무지 젓가락을 댈 수가 없었다. 오로지 먹고 싶은 것이라곤 엄마가 장롱 속 이불 사이에 숨겨 두었다 가끔씩 꺼내 맛보게 해주던 갖가지 종류의 쿠키와 비스킷들이었다. 외할머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끔찍한 생선살을 정성스레 발라 내 밥숟가락 위에 올려놓곤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입맛이 뚝 떨어져 일부러 크게 몸서리를 쳤다. 


   나는 엄마와 새아빠와 지내던 동안 밥을 먹는 도중 졸기도 했었다. 사실 엄마는 아침 일곱 시부터 일어나 가게 문 열 준비를 해야 했고, 새아빠는 출근 시간은 10시였지만 밥 같은 것은 애당초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상 아침식사는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에 딸기잼이나 꿀을 발라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점심은 유치원과 학교에서 먹었고 겨우 저녁식사 한끼를 엄마 식당이나 집에서 먹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꼭 밥을 한 공기 가득 담아 주면서 다 먹으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 곤욕이었다. 씹고 또 씹어도 목구멍 뒤로 좀체 넘어가지 않는 쌀알들 때문에 내 식사 시간은 한 시간이 넘기 일쑤였고, 그렇게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결국 왼손으로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는 했다.


   방학 때는 엄마가 아침과 점심으로 먹으라고 챙겨주던 밥을 내 방 창문에서 떨어뜨려 버리기도 했다. 밥공기를 두 손으로 꼭 잡고 홱 뒤집으면, 동그랗게 뭉쳐있던 쌀밥이 단번에 똑 떨어져 내렸다. 하루는 엄마가 싱크대에 놓인 밥그릇을 집어들고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밥그릇이 너무 깨끗한 거 아니야? 밥알이 한 톨도 안 붙어있네?"


  엄마는 뭔가를 알아챈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밥을 정말 다 먹은 게 맞냐고 다그쳤다. 아마 그날은 대충 얼버무려 밥공기 사건이 마무리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엄마는 이상하게 늑장을 부렸고, 평소에는 스스로 옷을 입던 나에게 손수 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그때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누가 아파트 뒤뜰에다 밥을... 지직... 주민 여러분, 누가 아파트 뒤뜰에 계속해서 밥을, 밥을 버리고 있습니다.’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방송의 다음 내용은 아마 '또다시 밥을 버리는 일이 일어나면 범인을 색출해서 엄벌에 처하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외투를 입혀 주면서 말했다. 


"참나, 도대체 어떤 못된 인간이 밥을 버리는 거야? 벌 받으려고."


  심지어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하하’ 하고 웃음까지 흘렸다. 나는 그 웃음을 듣자 엄마가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술이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더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외투의 단추를 잠가 주었고, 그렇게 나는 혼나지 않고 무사히 등교했다. 아마도 엄마는 나의 그 표정을 봤으면서도 모른척 했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게 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여느 나물반찬 같은 것들을 입에 댈 수 있게 되었고, 그 때쯤 동생은 이미 외할아버지 몫의 커다란 굴비까지 제가 먼저 떡하니 앞에 가져다 놓고 발라먹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눈과 입을 딱 벌리고 동생을 쳐다보았는데, 난 그게 무서워서 외할아버지 가까이에 놓인 반찬들 근처에는 젓가락을 가져가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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