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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꼬 Aug 12. 2017

[언어의 온도] 이기주 에세이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말, 마음에 새기는 것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19p)


사랑의 본질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 것.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25p)



글, 지지 않는 꽃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채 아물지 않은 그리움은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마련.

(116p)


영화나 동화 속 사랑은 기적을 만들어내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사랑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고, 사랑은 때때로 무기력하다.

다만 사랑은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을 지녀서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들이밀기도 하지만,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리는 것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의 동아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는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182~183p)


우리는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일수록.

(205p)



행,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린 새로운 걸 손에 넣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무작정 부여잡기 위해 애쓸 때보다,

한때 곁에 머문 것의 가치를 되찾을 때

우린 더 큰 보람을 느끼고 더 오랜 기간 삶의 풍요를 만끽한다.

(227p)


어떤 사랑은 한 발짝 뒤에서 상대를 염려한다.

사랑은 종종 뒤에서 걷는다.

(230p)


빌려온 것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므로 빨리 보내줘야 한다.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속에 작은 문 하나쯤 열어 놓고 살아야겠다.

분노가 스스로 들락날락하도록, 내게서 쉬이 달아날 수 있도록.

(232~233p)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248p)




일상 속 사소한 풍경을 남다른 시선으로 관찰하는 작가의 성향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냥 스쳐 보낼 장면도 묵직하게 바라보며 감정을 투영해 글로 말하는 일.

이기주 작가에게 '섬세함'은 글을 쓰기 위한 직업정신이 아닌 자동탑재된 능력 같다.

그럼에도 가슴에 새기고 싶은 주옥같은 문장들은 너무나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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