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 3년, 나에게 다시 묻는다 -
지난 주 밀양 위양못에 갔을 때 문득 물속에 비친 나무 모습에 눈이 갔다.
떨어지는 낙엽이나 지나가는 새의 작은 움직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돌멩이에 물 속 나무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물속의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늘 흔들림이 있었다.
직장 속 흔들림, 가정 안에서의 흔들림, 사람들과 만남을 통한 흔들림, 미래에 대한 흔들림 등.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물의 흔들림처럼 그 흔들림들은 하나하나 차례대로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혼탁함 속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지난 2014년 5월. 그 혼탁함을 걷어내고자 시도한 것이 글쓰기였다. 오랜 시간 묵혀왔던 남편과의 불화는 더 이상 묵혀지지 않아 겉으로 드러나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고, 그로 인해 나는 거의 반미친년처럼 살았다. 거기에 친정식구들 또한 그런 나의 힘듦을 모른 채 늘 그렇듯 무배려와 무관심으로 대했다.
그 어디에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하나 없었다. 주위 친구들은 그런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해하지 못했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며 지금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나만 참으면 된다고 충고 했다. 그래서 난 더욱 고통스러웠고 고립됨을 자처했다. 결국 고통이라는 벽에 갇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얀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의 첫 소절은 “왜?”였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들고
왜? 나는 이렇듯 무기력하게 있어야만 하고
왜? 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정작 나 때문인가?
내가 아니라는 해답을 얻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나만 잘하고 참고 있으면 모든 것들이 평화로운데 너는 왜 그토록 이기적이게 너만 생각 하냐고 탓을 했다.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배려 받고 싶은 것이 이기적인 것일까?
돌봄과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인양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가족 안에서 “왜?”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인 문제인가?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먼저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를 힘들게 흔들어대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아야만 인정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에 나는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해왔던 행동들과 결과, 그리고 내가 견디지 못하고 이렇듯 아파하는 진짜 이유 등……. 글쓰기는 나를 어릴 적 나로 돌아가게도 하고 어제의 나로 돌아가게도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어제도 그제도 가족 안에서, 직장 안에서, 관계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고통에 얽매여 벽을 만들지 않고 있다. 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흔들림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것이 글쓰기의 힘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의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외적 원인에 휘말리고 동요할 때,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줄 한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삶 안에 뒤엉켜있는 원인모를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펼쳐놓고 이것은 이런 이유로, 저것은 저런 이유로, 나의 감정은 이렇고, 나의 책임은 이렇고, 나의 슬픔은 이렇고 그래서 두렵고 막연했던 것이 별거 아니고 견딜만한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삶은 나에게 소중한 것이 된다.
흔들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작가의 말대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감정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그대로 내 곁에, 내 안에 남아있다. 다만 그것들을 인정하고 아파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글을 쓴다.
문제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나를 가두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삶이 늘 불행한 것만은 아님을 알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결국 난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