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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an 12. 2022

220112 위문

소녀시대가 위문공연을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2008년 군생활할 때 소녀시대가 위문공연을 올 거란 소문이 돌았다. 한창 스키니진을 입고 게다리춤을 추는 <Gee>가 대히트할 때여서 설마 진짜 소녀시대가 올까? 다들 반신반의했고, 2시간으로 편성된 무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7번째 순서로 나온다더라'는 소시가 나타나지 않자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J워크의 무대나 보고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여러분! 꿈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고, 다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네!" 하고 외쳤다. "정말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까" "네에에" 그렇다면 외쳐! 꿈은~이뤄진다~" "와아아~"


미친 함성 속에 진짜로 소녀시대가 등장했고, 그들이 최고의 히트곡 Gee를 부르는 동안 공연장은 말 그대로 태풍이 치는 것 같아 노랫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며, 내 눈앞에서 목발을 짚은 병사가 일어나는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 병사는 목발을 심지어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그날 행사에서 기괴한 장면이 또 있었다. 사회자가 가장 공들여 플래카드를 만들어 온 병사를 무대 위로 올라오게 했다. 번쩍번쩍 빛나는 9명의 소녀시대 앞에 한 명의 개구리복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사회자는 그에게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세 개의 제비가 들어있다고 했다. "소녀시대와 포옹할 수 있는 제비, 악수할 수 있는 제비, 마지막으로 꽝"이라고 했다. 사회자의 의도대로 군중은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 상태로 돌입했다. 


병사가 제비를 열어보니, 꽝이었다. 병사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갔고, 폭동을 예고하던 군중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그들은 좋은 건지 허무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등신, 등신"을 연발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저 제비를 뽑는 순간, 삼켰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꽝이 세 개 들어있지 않겠는가... 공연을 다 보고 돌아오는 동안, 사회자가 소녀시대에게 그런 이벤트가 있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을지 궁금해졌다. 


... 지금이라면 소시를 불러다 놓고 그런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왜 가능했나. 


소녀시대조차 그런 대우를 받았는데, 다음 해 위문공연 때는 무명 여성 댄스팀이 올라와 섹시댄스를 췄다. 무대 수준이 낮아진 만큼 사회자는 어디 나이트에서 행사 뛰다 온 것 같은 중년 남성이었다. 이 MC가 갑자기 분위기를 탔는지 무대로 나오더니 "병사들, 함성 질러봐라. 가장 크게 지르는 병사에게 대딸방 티켓을 주겠다"라고 말해 내 귀를 의심했다. 그 자리엔 장병들만이 아니라 공군 장교들 가족들도 있었다. 어린애들부터 소위 사모님이라는 분들까지 다 있는데, 그런 말이 나왔다. 아무리 군인이라 해도 우리 세대가 호응할 수 있는 수위가 아니었다. 기대만 못한 반응이 돌아오자 사회자는 댄서들에게 일렬로 서라고 한 다음 가장 함성이 큰 병사 셋을 무대로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 1분 동안 댄서와 함께 섹시댄스를 출 수 있도록 음악을 틀었다. 진심으로 토 나오는 광경이었다. 2010년의 일이다. 


2008년 나는 군생활이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기 때문에 소녀시대가 두 번째 곡으로 <힘내>를 불러줬을 때 살짝 눈물도 났다. 조금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 것 아냐. 세상을 뒤집자. 하지만 나는 그때 일병이었다. 17개월의 공군 생활이 남아 있었다. 막막한 내일이 너무나 두려워 힘이 많이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끔 그 무대를 생각하면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걸 느꼈기 때문에 소녀시대 2집 앨범이 나왔을 땐 주문을 했다. 좋은 노래라곤 하나도 없는 앨범이었다. 


공화국 원리에 대해 고민하면서, 국민개병제에 좀 더 동의하게 됐지만, 역시... 가급적 겪지 않았더라면 개인적으로는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오늘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일 나에게 일어났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가급적 분노할 일도, 원망할 일도 겪지 않고 싶다. 


위문이란 무엇인가. 봉사활동이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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