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보는 제주가 아닌 제주에서 바라본 진짜 제주의 모습
제주 토박이 청년들이 모여 만든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제주 서귀포 대정읍 작은 농촌마을의 폐마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인스밀. 얼핏 보면 요즘 유행하는 작은 창고들을 개조한 카페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스밀의 진짜 매력은 카페 내부가 아닌 밖에 있다. 큰 통창을 열고 나가면 길 따라 줄지어 서있는 야자수와 제주 소철들. 그리고 그 곁에 드문드문 놓인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마저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제주에서 외식 사업을 하는 현인엽 대표와 제주 토박이 동료들이 '제주스러움'을 모토로 만든 카페. 그래서 카페의 안팎을 모두 제주다움으로 채우려 했다고 한다.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첫 번째가 '제주스러움'이고요. 그렇다면 저희 같은 젊은 제주 청년들이 이걸 어떻게 하면 젊은 감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그렇게 하나둘씩 아이디어를 모으다 보니 이 공간이 나오게 됐어요."
과거 마을분들이 곡물이나 마늘을 저장하는 창고로 활용하던 곳을 카페로 탈바꿈한 현인엽 대표. 가급적 창고의 원래 모습을 살리고 더 나아가 '제주스러운 아이템'들을 공간 곳곳에 배치해 소개하고자 했다.
"저희가 단순히 인테리어가 잘 된 가게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카페) 기물 하나하나 그리고 음식 재료뿐만 아니라 유니폼까지(카페 종사자들의 유니폼도 제주 전통 갈옷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이곳을 들어올 때부터 보면 밑에 깔려있는 화산송이나 지붕의 제주 초가, 그리고 카페 외관을 꾸미고 있는 야자수들까지... 저희들에게는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인데 타 지역 사람들의 시선으로 봤을 땐, 이게 이렇게 하나로 모여지는 공간에서 보면 되게 색다르고 아름답게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제주민속촌 초가 장인의 손으로 직접 엮은 초가지붕과 제주 옛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허벅(제주 전통 물항아리)은 물론 카페의 메뉴에서도 제주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제주 지역 특성상 벼가 자라기 힘든 환경이어서 제주도민 분들에게는 보리가 주된 식량이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도민들에게는 보리가 좀 아련한 추억의 재료인데 제주 방언으로 보리 미숫가루를 '보리 개역'이라 하거든요. 밭일 나갔다가 새참으로 드시던 보리 개역이나 보리를 소재로 하면 어떨까 해서 저희 메뉴에 넣게 됐죠."
제주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제주의 재료와 공간을 담아낸 인스밀이 '제주스러움'을 살려내는 데에는 또 한 명의 제주 청년의 도움이 있었다. 바로 제주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문승지.
2012년 한 장의 합판으로 네 개의 의자를 만들어 낸 '포 브라더스'가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인 COS 전 매장에 전시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그는 이후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가구 디자인으로 호평을 얻었으며 최근에는 삼성, 한화 등 대기업과의 협업은 물론 공간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https://youtu.be/fqiElVz4gTM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가게들이 생겨나는 제주. 그 모습을 보면서 문승지 디자이너는 걱정이 들었다고 한다.
"항상 제주도에 새로 생겨나는 다양한 업장들이나 건축물들을 보면 다들 정말 대단하고 멋있는 게 많지만 어떤 것들은 너무 비슷한 거예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고 제주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땐, 더 나아가면 '훼손'이라는 키워드까지 나오겠는데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정말 제주 토박이의 시각에서 제주도를 표현해보자라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래서 순수하게 다 같이 모였어요."
제주 사람들의 시선에서 제주를 담는 공간을 표현하려 했던 제주 청년들.
"동료들과 같이 오래된 마을 창고를 재생하려고 모여서 어떻게 할까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까 우리가 어릴 때 가장 많이 보던 식물들이 떠올랐어요. 바로 야자수와 소철인데요. 어쩌면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제주도를 올 때마다 '이국적이다'라고 표현하는 소철들이 사실 저희에게는 너무 당연한 거였거든요. 학교 가는 길에도 야자수들이 쭉 줄지어 있었고 동네에도 어딜 가나 있던 것이 야자수와 제주 소철인데 저도 제주를 떠나 있다 보니까 그걸 이국적이라고 느꼈더라고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까 '어, 이거 원래 있던 거 구나' 그래서 야자수와 소철을 가지고 저희만의 '제주의 정원'을 꾸미게 됐죠."
진정성을 가지고 만들면
이곳에 오신 분들도 금세 알아채죠.
“지역성을 강조한 프로젝트이다 보니 작업하면서도 되게 재밌었어요. 저희가 만든 공간을 통해 이곳을 찾은 분들과 빠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고요. 그리고 저희 프로젝트에 공감한 분들이 그런 내용들을 주변 분들에게 전달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만들면 정말 같이 공감을 해주는 분들이 생긴다는 것을 배운 것 같아요. 공간 안에 스토리를 담으려 한 뭔가 정말 이로운 행위들이었잖아요? 제주의 원래 것들을 재생하고 긍정적 영향력들을 공유하려던 프로젝트이다 보니까 저는 그런 힘을 믿게 됐어요.”
밖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모습이 아닌 제주 사람들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현인엽 대표와 동료들. 그리고 낡고 방치된 폐허를 재생해 제주의 이야기를 담은 문승지 디자이너. 제주의 안과 밖에서 제주를 닮은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그들의 다음 공간이 궁금해진다.
https://youtu.be/mRNT7pjNTRg
#리플레이스 #공간재생 #제주인스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