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서 육아까지, 지출의 소용돌이 앞에서
결혼 준비를 하며 느꼈다. 자칫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지출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바짝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온갖 비싼 상품들에 투자 아닌 투자를 할 것만 같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들이 의미를 띄고, 그에 따른 소비를 권하기 마련이었다. 평소에는 관심없던 보석마저 이참에 모셔야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산이 넉넉치 않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 끝에 후회할만한 소비를 크게 남기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돈이 뭉텅이로 나가는 경험을 할 뻔 했다.
사람들은 드물고 소중한 경험을 하며 그와 관련된 물건을 기꺼이 구매하곤 한다. 이를테면 해외여행지에서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많이들 사는 인기 제품을 구매하는 식이다. 나의 경우 몇 번의 해외여행을 면세점과 현지 쇼핑으로 채웠는데 쇼핑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인지 그 외에 기억은 흐릿하다. 반면 쇼핑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주체적으로 즐겼던 여행이 더 귀한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임신을 하고 나는 또 한동안 지출의 소용돌이 앞에 서 있었다. 나름의 고민을 한 결과 결국엔 이리저리 피해갔지만 말이다. 부부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여유를 즐기는 태교여행을 우리는 가지 않았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느끼는 평안이 좋아서이기도, 시간과 돈이 짬이 나지 않았서이기도 했다. 또, 만삭사진도 찍지 않았는데 아무리 공짜라한들 성장앨범(만삭부터 신생아, 백일, 돌 등의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찍는 상품으로 대략 80만원 이상이다) 제작을 꾀는 마케팅에 빠져 덜컥 계약을 할 것이 염려돼서였다.
뿐만인가. 아기가 나오면 백일과 돌잔치 등 결혼식 버금가는 행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돌잔치는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 이전에 예약을 하면 할인 혜택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미리들 준비하는데 일반적으로 밥값만 몇백만원이 들고, 의상 메이크업부터 스냅촬영까지 준비가 영 번거로운 일이다. 사실, 아기는 기억도 못할 잔치가 무슨 소용이랴. 간단히 사진 정도만 찍어줄 생각이다. 양가 부모님이 느끼실 섭섭함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철학과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하고 싶다.
경험한 바 큰 돈을 투자하는 데는 가성비를 따지게 된다. 큰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기에 후회가 남을 가능성도 크다. 아기가 태어난 나중을 계획하며 나도 모르게 검색하는 것들이 많다. 층간소음방지매트, 아기방 꾸미기, 아기 침대, 장난감 수납장 등. 그런데 무엇이 진정으로 아기를 위한 투자인지를 잘 따져볼 일이다. 시중에 좋다고 나온 상품들로 모든 걸 준비한들 더 좋은 것이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두뇌 발달에 좋다는 책을 전집으로 사놓아도 아이가 읽지 않으면 그만. 또, 막상 아기방을 꾸며놓아도 정작 아이가 거실에서만 놀고 생활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아기의 의사를 모르는 많은 물건들을 미리 쌓아놓을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자식은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다. 비싼 장난감을 사주는 대신 시간을 들여 창의적으로 놀아주는 게 옳고, 학원으로 돌리는 것보다 부모와 애착을 쌓고 아이의 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체험을 하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덜컥대고 돈 드는 것들에 기대다가는 자산만 탕진하는 비효율의 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요새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에 욕심이 들어 만약 백만 원의 꽁돈이 생기면 무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음식물쓰레기분쇄기를 설치할까, 공기청정기를 하나 더 들일까. 로봇청소기를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사고 싶은데... 아무래도 백만 원으로는 모자라지 싶다. 모든 것을 채우기보다 조금의 결핍에도 만족하는 것, 구매 욕구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좋은 상품과 소비에 취하기 전에 가져야할 태도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