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토끼 Aug 08. 2021

#65 전업주부 or 워킹맘? 그냥 나로 살기

-면접을 하루 앞두고

현재 3개월째 한 회사에 다니는 중이다. 어쩌다보니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별 뜻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믿었으니까. 본격적인 회사 생활 같은 건 꿈을 꿀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늘 마음을 다잡았지만 무너지는 횟수가 잦았다. 그러다 밤중에 채용공고 사이트를 눈팅하는데 내게 맞아보이는 회사가 보여 다음날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넣었다. 연락이 왔고 다음날 면접을 보고 바로 결과를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회사를 나갔다. 그동안의 경력은 소위 물경력이 되었고, 새로운 직종이었지만 다시 사회에 몸을 담았다는 것이 그리도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이 등원은 남편이 맡았고, 하원은 친정 아버지가 해주셨다. 그리고 저녁까지 부모님 댁에서 얻어먹게 됐다. 

출근 첫 주부터 아이는 감기에 걸려 아팠는데 모두가 도왔다. 친정 엄마는 일을 하루 나가지 않았고, 동생까지 반차를 이용해 아이를 돌봤다. 친정 아빠가 일주일간 아이를 보는데 생각보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따랐다. 

회사생활에서 모든 게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격지심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부득이 견뎌야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어쨌든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만큼 이 생활에 만족했다. 오히려 지난 날의 선택이 이제와 후회됐을 뿐이었다.

나는 참 지독히도 한 회사에 붙어있었다. 세 번을 관두고자 했지만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내가 이 회사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 등 세뇌와 같은 것들로 주저앉았다. 아무런 보상없는 시간들이 가고 몇 년이 지나 회사는 순순히 나를 내보내주었다. 머리가 큰 나를 내보내고 더 어린 직원을 쓰고자 하는 계획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현 회사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일에 몰두했다, 비정규직으로 미래에도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다가도 꿈에 업무가 나왔고,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애썼다. 애초에 자존심은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아침 일찍 출근해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도 내가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뼈에 박힌 눈치라는 것은 여러가지로 훗날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게 했다.

이제야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조금 알았으며 앞으로는 절대 전업주부로 살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배우자가 승진을 하는 한편 동갑인 나는 아직 나의 커리어를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는 데에 막막한 생각마저 들었었다. 또 외벌이로 살면서 참게 되는 여러 가지 것(특히 소비)들에 불만족은 나날이 커졌고 말이다.

결국 육아도, 생계도 부부가 함께 짊어지는 것이며 각 가족마다 가족원에게 맞는 방식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튼 내가 다시 직장을 찾게 되며 비로소 우리는 행복에 더 가깝게 되었다.

나는 완벽한 워킹맘은 아니다. 청소는 남편이 책임지고 있으며 평일에 친정 부모님의 육아 도움도 받는다. 용돈을 드리긴 하지만 나와 아이가 얻는 이점이 더 큰 것 같다. 아이는 밥을 대충 떠먹여주는대로 먹고, 하원후 할아버지가 틀어주는 유튜브 영상도 많이 본다. 이렇게 전업주부였을 떄는 허용하지 않았던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내일은 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현 직장, 현 위치보다 나아보이니 꼭 붙으라는 곳이다. 과거엔 결코 취업에 자신이 없었는데 아이를 낳고 생긴 용기인지, 뒤늦은 욕심인지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단시간에 참 많이도 변했구나 느끼며 나는 그동안 쉬어있던 꿈들을 하나둘 이뤄가고 싶다.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제는 원하는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64 전업주부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