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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Sep 15. 2020

#64 전업주부가 되었다

-외벌이로 살기

육아휴직 후 퇴사를 했다. 한동안 백수로 방황을 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모든 게 버거웠다. 이러다 나라는 존재가 매몰되는 건 아닌지, 82년생 김지영처럼 파국을 맞는 건 아닌지. 온갖 상상을 했다. 그러는 동안 세상 착한 남편은 나를 바깥으로 돌게 했다.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여행을 하며 재미도 즐기고.

얼마 전부터 다시 현실감각을 찾았는데, 계기가 있다. 바로 적자. 육아휴직 급여가 종료되고 두 달간 우리의 지출은 수입을 넘어섰다. 남편의 선물은 카드 값, 할부가 되어 돌아왔고 퇴직금을 받았다고 주변에 인심 쓴 대가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인과응보였다. 이대로 살다가는 갖고 있는 돈을 모두 탕진하겠구나 싶었다.

채용사이트를 찾아봤다. 할 만한 일이 있을까. 원하는 시간대의 일은 월 급여가 100만원 남짓이었다. 정식으로 직장을 다니기엔 부모님의 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 어린이집 종일반을 보내고 직장을 구할지 남편과 의논했다. 짧은 대화 끝에 당분간은 이렇게 살기로 했다.

사실 직장을 관둔 것도 나름의 소신 때문이었다. 현실이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은 이상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책임도 크게 생각한다. 무조건 직장을 다녀야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키우다보니 아이가 나를 의지하는 만큼 마음이 약해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래도 경제적인 보상이 더 크게 따르는 직장이었으면 쉽게 관두진 않았을 것 같다. 그만큼 무엇이 확실히 더 쉽다, 편하다 하는 쪽은 없다.

이제야 전업주부 일을 선택한 사람이 되었다. 할 일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급했던 것은 지출관리. 제일 먼저, 배달 어플을 지우고 소비를 할 때마다 남편과 서로 내역을 공유했다. 가계부 쓰는 습관 쌓기가 어렵다는 걸 알기에 생각해낸 묘안이었다. 고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핸드폰 요금제를 바꾸고, 보험을 수정했다. 하다못해 화장품이나 헤어에센스 등 그동안 해왔던 소비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유난을 떠니 엄마가 장도 한 번 봐주고 화장품도 주셨다. 물론 그동안은 내가 부모님 댁 장도 봐주고 화장품도 사드렸으니 돌아오는 보답이다.

가족들은 초반에 나의 급변한 행보를 반신반의했다. 그만큼 씀씀이가 헤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해선 잘 쓰지 않는다. 그동안의 소비가 얼마나 덧없었는지를 깨달은 지금, 보다 단순해진 생활에 만족하는 면도 있다. 미니멀라이프를 꽤 오랫동안 지향해왔는데 이제야 행동이 좀 따르는 느낌이랄까.

계획했던대로 산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저축은 맞벌이로 살 때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준비하는 일을 몇 년 후 하게 된다면 이전보다 나아질 지도 모른다. 결국, 외벌이나 절약하는 삶도 나름 괜찮다는 결론이다. 외벌이로 사는 주부에게 왜 쓰고 싶은 것을 참으며 굳이 집에서 노느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남편에게만 기대 산다는 시선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난 떳떳한 입장. 직장에 속한 삶이 부와 가정의 화목을 주는 것이 결코 아닌 바, 우리는 이렇게 또 고비를 넘고 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놓으며 하고 싶은 말 한 가지.

‘우리 모두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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