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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un 29. 2020

#63 제사가 뭐길래

최근 참석한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남자는 살면서 세 가지가 필요해요. 집, 차 그리고 배우자.”

특별히 배우자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으니 “저는 집안 제사를 꼭 지내야 하거든요”하며 얼버무린다. 스물아홉 청년이 하는 대답 치고는 우습기도 하고 신선했다. 적대심이 들게 하기 보다는 허술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본인 생각이 그렇다니 넘어가기로 했다.     


‘오늘 제사 8시에 지내면 안 돼? 아기 9시면 자는데, 8시 반이면 피곤해서 눕는단 말이야.’

‘제사 9시 넘어서 할 거다.’

‘그냥 8시 반으로 해.’

며칠 전 가족 대화방에서의 말들.

첫 번째는 나, 두 번째는 아빠, 세 번째는 엄마다. 


늘 그렇듯 제사는 나를 곤두서게 하고, 아빠와 대립하게 한다. 시댁 제사는 내게 전혀 문제가 아닌데 어릴 적부터 우리 집 제사가 그렇다. 

거리가 먼 시댁 제사는 몇 번 참석해 본 적이 없는데, 반대로 남편은 해외출장 등 부득이한 때를 빼고는 늘 참석한다. 언젠가 내가 임신한 몸에 힘이 들어 제사에 가지 않는다고 하니 남편만 보내길 바란 적도 있다. 아빠는 직접적인 자손인 나보다 남자인 남편이 제사에 참여하기를 더 바란다. 그것이 영 얄밉다.    


제사가 끝나고 여동생은 남자친구와 다투었다고 한다. 형부가 참석했다고 하니, 남자친구가

 “보통 사위들은 참가 안 하는데 신기하다.”

라고 말한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가볍게 뱉은 말이지만 그것이 복잡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니... 하여튼, 제사라는 것은 참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한다 싶다.     


한편, 엄마는 제사가 싫지는 않다. 시동생인 우리 삼촌이 아직은 미혼의 넉넉한 형편이라 거하게 용돈을 챙겨주기 때문일 게다. 전은 근처 전집에서 5만원어치 맞추었는데 제법 맛이 좋았다. 그 외에도 세 가지 나물, 굴비 구이, 닭, 탕국, 산적 등은 직접 준비했지만 베테랑이어서 전에 비해 많이 편해졌다 하신다. 아빠도 음식하는 재주가 좋아서 늘 함께 하시고 말이다.

   

이번 제사는 가족들이 많이 모여 의외로(?) 즐거운 자리가 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고모도 최근엔 꼭 오려고 하신다. 뭐, 삼촌이 조금 성가신 주제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인간적인 가족 모임의 모양새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행복은 가벼운 일상 속에 있다고 한다. 제사 또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어떤 자리로 받아들인다면 별 탈 없겠다. 다만, 한 사람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즐거운 자리를 만드는 데 모두가 일조하며 경계를 허물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상님도 자손들이 서로 잘 지내기를 가장 바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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