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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un 29. 2020

#62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 것

-내가 복직한 동시에 퇴직한 이유

시험공부를 할 때 중요한 마음가짐 중의 하나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처지를 남에게 비춰 비교하는 것은 자기발전에 결코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나는 회사를 나온 내 모습이 ‘을’처럼 느껴져 억울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이미 지난 일인데도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성가시다. 

내가 출산 전 다니던 회사는 여럿이 힘 합쳐 열악한 상황에서도 공통의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애쓰는 집단이었다. 그러나 복직 하루만에 파악한 회사는 각자 이기적인 이유로 유지되는 집단으로 바뀌었다. 결과물의 성과보다는 회사의 존속과 자신들의 안녕이 우선으로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퇴직 과정에서 내 입장에 서주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나를 가족같이 여긴다던 한 분은 끝끝내 나를 모른 체 했다. 회사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몸 사리지 않던 나의 공은 그들에게 기능적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부려먹기 좋은 일꾼이었을 뿐 그에 상응한 대우는 없었다. 

외부에서 보면 가장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말과 글은 너무나 교양과 연륜이 넘친 반면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사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근로자의 말도 안 되는 헌신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받는 만큼 일한다는 요즘식의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았으며 주인의식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 정신이 팽배한 비합리적인 환경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줄도 없고 힘도 없는 말단 직원이었나 보다. 그곳에서 나눴던 마지막 대화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내겐 너무 모욕적인 자리였다. 그의 관점은 나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자원을 대하는 듯 했다. 그동안 헌신한 나를 배려하기보다 윗사람을 의식한 태도였는데 본인은 그저 원칙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자신의 말은 다 맞고 나의 말을 그저 감정적일 뿐이라는 태도. 결국 나는 ‘헌신하다 헌신짝’ 되었다. 

5년 넘도록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 실무적으로는 내가 키워놓은 회사인데 몇 번이나 외부에서 평이 좋지 않은 상사를 데려다 내 위에 놓았다. 물가상승률만큼의 임금 인상도 없었다. 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시간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이 적은 임금이지만 나의 육아에 괜찮은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동안 내가 쌓아놓은 것들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니 적어도 그것이 알맞은 대우라고 말이다. 

외부에서 양아치 소리를 듣는 사람이 다시 상사가 되었다. 육아를 하는 그는 페이도 높아졌고 근무시간도 짧아진 이곳에 만족해했다. 나는 덩달아 이 회사가 여성친화적인 환경으로 바뀌어 퇴근시간이 빨라졌다고 착각했는데 나에게만큼은 아니었다. 그것이 내가 회사에 복귀하는 유일한 이유였는데.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 나는 다음날 출근하지 못했다. 

내 목소리를 높여보았자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미 마음이 약해질대로 약해져 할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만 났을 것이다. 변변치 못하지만 내가 그렇다. 내가 뚫을 수 있거나 바뀌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 얘기해 본들 상처받는 사람은 나뿐이 될 터였다. 

그들은 여전히 가장 상식적인 모습으로 지식과 교양과 연륜이 넘치는 글을 쓴다. 그들은 시인이기도 하고, 수필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쌓아온 세월에는 이로운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면 생각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되는 나 같은 사람의 희생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난 이번만큼은 약자.

하지만 자기연민에 빠질 필요까지는 없음을 인정한다. 내게는 엄청나게 든든한 가족이 있으니. 내 나름 취할 것은 취했다 위안 삼자. 당분간은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역량을 키워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냥 지난 세월의 억울함은 앞으로 있을 희망으로 대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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