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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Dec 26. 2021

#66 신세한탄

- 현실 문제 없어보임에도 원형 탈모 온 워킹맘 직장인의 고민

글을 잘 쓰지 않게 되는 이유는 바로 신세한탄으로 시작해 끝이 난다는 것.

그러나 어쩌나, 그것밖엔 소재가 없다.

최근 살면서 두 번째 원형탈모를 겪었다.

번째는 밥 안 먹는 돌 아기 육아로 힘들 때였고, 이번엔 직장에서 받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몸으로 찾아온 스트레스는 탈모 뿐 아니라 면역력 저하, 무기력증, 만성 피로로 이어졌다.

살도 많이 쪘고, 생리 불순까지 찾아왔다.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가. 왕복 1시간 반 정도의 자차 출퇴근 시간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럼에도 그만 두지 못 하는 것은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관둔다고 말 하는 것에 명분이 없어서라고나 할까.

이곳을 떠나 다시 전업주부가 된다는 것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6년 정도의 직장생활 경력이 있었다.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했고, 끝은 초라했다.

잠깐의 쉼 이후 다니게 된 현 직장은 계약직에 새로운 업계였고, 업무분장조차 제대로 안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무경력 계약직 대우를 받으며 일을 주지 않는 곳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그러자 새로운 부서가 생겼고, 상사의 지시나 감독 없이 나는 경험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로 계속 무언가를 이루었다.

그 일은 충분히 가시적이었고, 인정받을만 했지만 그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출장을 하면서 자차를 이용했지만 그에 대해 유류비 외에 지원은 없었다. 하물며 영수증으로 청구하는 경비마저 몇 달이 지나도 입금되지 않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3시간 거리로 출장을 가도 퇴근 시간이 빨라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직장 내 분위기가 정말 숨 막혔다. 3주 가까이 되도록 감기를 달고 살며 어쩔 수 없이 출장을 가는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준 동료가 한 명도 없었다.

학연지연으로 얽힌 여직원들의 그룹에서 나는 겉도는 편이었다. 그 중에 두어명은 내게 까칠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자격지심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직장이란 건 자존심을 한 풀 꺾고, 자존감은 눌러두고 다녀야 하는 곳이었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 직장에서는 모든 것이 내 위주였기에 겪어보지 못한 대접이었다.

이에 대해 딱히 털어놓을 곳이 없었고, 가족들은 그냥 '관두라'고만 했기에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멀리서 보면 괜찮아보이는 내 삶에는 모순이 있었다.

현실이 괜찮아 보여도 이상주의자였던 나의 마음에는 늘 공허와 외로움이 가득했던 것이다.

주변 친구들의 공통적인 이슈는 집, 차, 결혼, 가족(여자의 경우 남편, 시댁) 문제 등인데 나의 경우 그것보다는 여전히 '자아실현' '적성' 등을 문제로 느꼈기에 그들 눈에는 배부른 고민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내가 그들보다 현실적으로 결코 잘나지 않았음에도 부동산이 급등하면서 집을 미리 구매한 사람과 구매하지 않은 사람 간에 어떤 격차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무튼 내가 보기엔 좋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지만 그들은 부동산이 오르기 전에 집을 산 내가 부러운 것이다.

사람마다 처한 현실이나 주관이 다름에도 늘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사람이 있다.

회사에 있는 B도 마찬가지인데 언젠가 내가 돈을 잘 쓰고 살만 해보인다고 뾰루퉁한 말을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B의 남편은 우리 내외 월 수익의 1.5~2배 이상을 매달 버는 사람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엄마'임에도 그 티를 안 낸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직장에 나와서 아이 이야기를 할 게 뭐가 있겠나. 또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특이점이 있다가 그걸 극복한 아이기에 항상 사랑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내게 기혼자, 엄마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나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남편이 잘 하잖니.' '집이 화목하잖니.' '앞으로 집 고민은 안 해도 되잖아.'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첫 직장에 헌신하다 헌신짝이 되었고,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자존심도 죽이고 산다고.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돌이 조금 지나서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육아를 했고, 그 시간들이 트라우마라고.

그 시간들 중 가장 힘들었을 때 남편은 바빴고, 가장 친한 친구한테는 너무 큰 실망을 했고 그 이후로 곁에 사람을 쉽게 두지 않는다고.

그리고 현재 나의 몸 상태가 객관적으로도 나 또한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이다.

어찌됐든, 직장은 거지 같지만 관두는 것 자체가 내겐 어려운 일이고, 상황은 힘들지만 스스로 헤쳐가면 될 일이다.

불교 격언에서 그러지 않는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언젠가 더 좋은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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