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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Dec 30. 2022

#69 평범했던 가정에 찾아온 위기

- 우리 함께 헤쳐 나가자

서른 중반의 나는 이제야 남들처럼 살면서

과거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며

피곤한 일상을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중이었다.

멀리서보면 꽤 그럴듯해 보이는 생활을 하며

속은 점점 메말라가는 그런 삶을 견디면서.


그런데 그 평범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최근이다.


“여보, 내가 가슴 밑에 피멍이 보이고, 멍울이 만져져서

동네 내과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의사 소견으로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고,

서울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아.”


정신없이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여서였을까,

남편의 전화를 받으며 꿈을 꾸는 것처럼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기는 거지?’


한동안 나는 우리의 사랑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무심하고, 늘 피곤해하는 남편을 보며 그의 영혼이 다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막상 남편이 안 좋은 소식을 이야기 했을 때

연인이기보다는 동성친구처럼 대했던 것 같다.

‘할 수 있어. 길게 보고, 여유있게 헤쳐 나가보자.’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담담히 말했는지 모르겠다.

서울에 검사를 받으러 가서 골수검사 통증과 다른 증상(통풍) 때문에

며칠째 부모님 댁에서 머물며 내려오지 못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안쓰러워 자꾸 눈물이 난다.


‘아마 우리의 사랑이 다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미움이 많이 차 있었던 것이겠지.’


남편은 늘 변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체력만큼은 갈수록 떨어져서

대화도, 관심도 줄었는데 그것이 만성피로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코로나에 걸렸던 이후로는 살도 10kg이상 빠지고,

몸은 더 안 좋아졌는데 어떤 병 때문이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린 아직 35살, 지금에 오기까지도 참 힘들었는데

시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비정규직이었던 남편이 정규직이 되고,

뱃 속에서부터 이슈가 있던 아이가 건강해지고,

직장때문에 괴롭던 내가 새 직장을 다니게 되고,

최근 몇 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행복하게만 지내면 되겠다 생각한 찰나에

다시금 넘어서야 하는 벽이 생기다니.


착한 남편은 막상 병원에 가니 아픈 사람들이 많다며

자긴 약만 잘 먹으면 잘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팔에 피멍이 들고, 코피가 나는 것을 보며 나는

“나한텐 여보가 제일 불쌍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일은 병가를 내고

진단을 받아 표적항암제를 먹으며

각종 수치들을 관리하며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일이다.


병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에 따라 앞으로 치료에 대한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결국은 넘어설 일이고, 함께 헤쳐나갈 것이다.


순간순간 슬프고 힘들겠지만

비극을 마냥 비극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지혜롭게 위기를 넘어서는 법이니

우린 그렇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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