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필가 세이 쇼나곤은 세상에 없는 것 세 가지를 이렇게 꼽는다.
<며느리 욕을 하지 않는 시어머니, 주인 욕을 하지 않는 하인, 털이 잘 뽑히는 족집게>
세이 쇼나곤은 1천년 전 사람이다. 1천년 전보다 족집게 성능은 좋아졌겠지만, 하인들의 성정은 바뀌지 않는다.
천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천년 뒤에도 하인들은 주인 욕을 한다. 현대의 '하인'인 직장인들은 매일 회사 욕, 상사 욕을 한다. 그래서 대개 직장인들의 하소연은 권태롭고 진부하고 부질없다.
그런데 이 책의 욕은 신선하다. 저자가 쉴새없이 회사 욕, 상사 욕을 하는데 이 회사들이 상당히 좋다. 버클리대학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골드먼삭스, 페이스북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뒷담화' 대상은 IT업계의 아이돌 마크 저커버그, 여성 직장인들의 우상 셰릴 샌드버그.
마르티네즈는 실리콘밸리의 속살과 민낯을 인정사정없이 공개했다. 까발겨진 속살과 민낯이 추레하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효율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상사들은 인격 모독을 서슴지않고, 부하들은 회사와 상사의 뒤통수를친다. 그것도 대놓고! 상사는 부하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부하는 회사가 비전이 없다며 퇴사 이유를 너무 간단히 밝힌다. 회사는 이직을 결심한 이민자 출신 직원에게 비자문제로 겁을 준다. 퇴사자는 업계의 관심을 끌기위해 전 직장 뒷담화를 인터넷 공간에 '전체 공개'한다.
기업 문화가 수평적일것같은 페이스북 안에서도 저커버그는 1인 독재자 같은 위상을 차지한다. 쿠바 망명자의 아들인 마르티네즈는 페이스북의 기업 문화와 쿠바의 독재 체제가 다르지 않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저커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를 소시오패스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화로 뒷거래를 진행하고, 투자자나 공동 창업자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 마르티네즈는 페이스북에 입사하기전 스타트업을 운영했다. 마르티네즈의 메시지를 짧게 요약하자면 "스타트업, 절대로 하지마라"로 보면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는 한국 언론의 관성적 보도도 허구에 가깝다. 회사를 관두고 창업을 한 마르티네즈는 회사의 보복성 소송에 시달린다. 저자는 스타트업 창업은 "절벽에서 일단 뛰어내린 뒤 땅에 부딪히기 전까지 비행기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소개하기도 한다.
다만, 마르티네즈는 스타트업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는데 책에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간직하고 있어야 할 아포리즘이 상당히 많다.
몇 가지 예를 들면...
- 실행력없는 아이디어는 똥구멍에 불과하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다.
- 직원은 돈보다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다.
-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연기가 늘 뿐이다.
-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
저자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기적이 필요하다. 필요한 기적의 수도 정해져 있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은 기적이 '한 번'이면 충분하다. 에어비앤비와 우버 사례의 경우 소비자 행동의 관점에서 볼 때 기적이 일어난 셈이다. 반대로, 망징패조(亡徵敗兆)가 깃든 기업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필요하다. 마르티네즈는 자신의 기업이 성공하려면 성서에 등장하는 기적만큼이나 많은 기적이 필요했다고 술회한다.
책 제목인 ‘카오스멍키’는 소프트웨어 이름이다. 원숭이가 난장판을 만드는 것처럼 전산 시스템에 과부하 상황을 만들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는 테스트 프로그램이다. 저자는 IT업계의 창업자가 우리 사회의 ‘카오스멍키’와도 같다고 말한다. 기존 산업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원숭이들 때문에 다른 인간이 치러야하는 비용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단순히 실리콘밸리 뒷담화를 넘어 우리 모두를 향한 문제제기로 확장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천재 원숭이'들이 마구잡이로 만들어내는 혼돈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생존해야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첨단 IT기업들은 수익성 극대화와 기업 시스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직원들의 개인 생활을 철저히 무시한다. 막대한 부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초기 창업 멤버가 아니라면 주식 대박은 남 이야기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은 퇴직금이나 노령연금 같은 실질적인 근로자의 복지 설계엔 관심도 없다.
산업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양산되는 실업자도 실리콘밸리의 관심 밖에 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택시기사와 숙박업자의 생계는 신경쓰지 않는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걷는 글로벌 금융회사와 IT업계를 신랄하게 씹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는 사도 요한은 아니다. 실리콘밸리라는 지옥을 조감하고 돌아와 경고하는 단테에 가깝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한 구절로 글을 끝마친다.
"넌 지성의 선을 잃은 자들, 그 비참한 무리를 보게 될 것이다."
P.S. 문체는 가볍지만 문제의식은 꽤나 묵직하다. 이 책을 자기계발서 정도로 포장한 출판사의 몽매(蒙昧)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