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카제 <<미디어 구하기>>
인류 최초의 미디어로 꼽히는 ‘악타’(acta)는 카이사르가 만든 로마의 관보였다. 카이사르가 악타를 만든 목적은 원로원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악타에 원로원의 회의 내용이 공개됐고, 로마의 주민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원로원의 내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자신의 업적을 치장하기 위해 악타를 활용했다. 악타는 카이사르가 로마의 왕이 되기를 거부했다며 카이사르의 ‘겸손한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미디어는 사회를 진전시키기도 하지만, 독립성이 훼손된 미디어는 사회를 타락으로 이끈다.
민주주의의 성취로 미디어는 차츰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자본권력의 속박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미디어 시장의 경쟁은 격화되고, 물적 토대는 취약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미디어 콘텐츠를 ‘공짜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정작 그 ‘공짜 상품’을 만들어내려면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한다. 미디어가 전주( 錢主)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자칫 미디어가 억만장자의 취미용 수집품이 되거나 거액을 투자한 특정 기업과 개인의 영향력을 확대시켜주는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줄리아 카제의 문제 의식도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미디어가 공공재로서 제 기능을 발휘해야 민주주의도 지속 가능하다.
카제는 새로운 미디어 모델로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를 제안한다. 카제가 그리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기업은 비영리 법인인만큼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미디어의 1차 목적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토론을 위해 필요한 자유롭고 독자적인 양질의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카제는 강조한다.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는 재단과 주식회사의 중간 형태로 미디어 내부에서 특정인의 발언권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한다. 지분이 커지더라도 일정 비율 이상이 되면 의결권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다. 대신 직원과 독자,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가 발언권을 갖는다. 거액을 투자한 대주주가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기부자’와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는데 면세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카제의 문제의식엔 공감하지만,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라는 해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 방식으로 자본금 수천억원을 보유한 기존 언론과 경쟁할 수 있는 언론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협동조합’등의 형태로 진보 성향의 새로운 언론을 만들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결과물은 팟캐스트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소수의 인력으로 차별화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한국에서 미디어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구조를 보면 그런 주장은 쉽게 기각된다. 방송사 뉴스 가운데 가장 차별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JTBC 뉴스의 시청률이 KBS1 뉴스 시청률의 절반에 불과하다. 심지어 최근 KBS는 파업으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거의 만들지 않고, 관성적인 보도를 지속하는데도 시청률은 견고하다.
우리나라의 신문 역시 강한 정파성을 띄고 고유의 관점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신문 시장의 지형도는 수십년간 바뀌지 않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미디어 시장의 모델은 시민들이 양질의 콘텐츠에 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고, 그런 지성을 갖춘 시민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디어를 여가 선용과 오락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들의 습성은 바뀌지 않고, 언론사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와 미디어의 ‘오래된 습관’이 바뀌려면 카제가 제시한 대안보다 더욱 ‘복잡한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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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줄리아 카제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의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