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를 같이 먹은 사람보다 고기를 함께 먹은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랬다. 고기를 굽는 짧은 시간 동안 상대의 집게질이나 가위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도 함께 요리를 하는 추체험을 했다.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라는 기이한 이름의 저자가 쓴 <<음식의 세계사-여덟번의 혁명>>을 읽었다. 이 사람이 보건대, 음식의 세계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불로 음식을 익히는 순간이다. 위대한 첫번째 혁명이다. ‘문화는 날것을 익힐 때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을 때, 이 모닥불은 교감의 장소가 되었다.’ 과감한 분석이다. 역시 사시미보다는 등심이다.
먹을 것을 물에 헹궈먹는 인류 최초의 조리는 개인적 행위다. 하지만 불에 음식을 익히는 과정은 공동체의 경험이다. 불을 다루려면 공동의 노력과 분업이 필요하다. 최초의 인류는 함께 사냥을 한 뒤 짐승의 고기를 각자 가져가서 먹었지만, 불을 찾아낸 뒤엔 정해진 장소에서 일정한 시각에 함께 먹었다. 뭔가를 먹는 나의 몸 둘레에서 다른 사람이 같이 뭔가를 먹는 기기묘묘한 행위가 펼쳐졌다. 문명의 기원이다.
그런 면에서 ‘패스트푸드를 먹는 사람의 고독은 비문명적’이다. 패스트푸드와 함께 등장한 전자레인지는 음식 문명과 문화의 종말을 알려주는 불길한 묵시록이다. 펠리페는 전자레인지를 문명의 적으로 규정한다. 이제 불은 사라지고, 음식은 '탈사회화'하고 있다. 혼밥을 하는 인류는 더 이상 불을 피우지 않는다. 부엌도 더 이상 필수 공간이 아니다. 전자레인지로 끼니를 혼자 해결하는 이 시대에 고깃집 숯불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전자레인지와 불이 아마겟돈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이 시대를 우리는 지금 관통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우리 집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게 언제였던가. 뭐라도 끓이거나 구워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