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장산 호랑이 Jun 09. 2019

불로소득 자본주의

‘타다’ 를 타보고 소비자 입장에서 남기는 주관적 인상비평.

저녁 무렵 서초역 주변 은행에 가보면 삼삼오오 모여있는 남자들을 볼 수 있다. 은행 창구는 폐쇄되고 자동입출금기 사용만 가능한 시간인데 이들은 입금도 출금도 하지 않는다. 추위나 더위를 피해 들어온 이들은 휴대전화만 응시하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들이다. 이들에게 대기 장소는 제공되지 않는다. 이들의 지루한 대기 시간도 노동 시간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N잡러’ 시대,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하는 ‘긱 워커’의 사례로 대리운전을 꼽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정규직만 직업이라는 편견을 이제 버려야 한다는건데, 비정규직 700만 명 시대에 ‘정규직만 직업’이라는 발상은 버려야 하는 편견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대를 ‘긱 이코노미’로 명명하며 반기는 것도 개운치 않다.

가이 스탠딩이 쓴 <<불로소득 자본주의>>를 읽고 ‘우버’ ‘타다’ 등 이른바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확고한 반대론자.....가 될 뻔 했다.

이 책은 우버를 겨냥한 ‘지적 탄약고’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기만과 허울을 가차없이 벗겨냈다.  

1.'공유경제'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플랫폼 자본주의를 공유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허위다. 영리 목적의 상업적 서비스를 이웃간 우호적 공유로 보이게끔 만든다.
게다가 우버, 에어비앤비 등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는다. 노동중개인이라는 명칭이 들어맞다. 이들이 중개하는 노동의 형태는 대개 단기 업무의 형태를 띄면서 서비스 공급자들이 자기 자신의 장비와 자산(승용차, 자택 등)을 활용한다. 거간을 붙이고 수수료 형식의 구전을 취하는 이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플랫폼 자본주의’를 공유경제로 부르는게 합당한지 의문이다.   
가이 스탠딩은 컨시어지 (concierge) 경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디지털 플랫폼'  작업자들이 엘리트와 샐러리아트(월급을 받는 정규직 근로자) 계급을 위해 일하는 맞춤형 하인에 가깝다는 의미다.

2.저비용으로 노동자의 착취를 유도한다
플랫폼 노동 작업자들은 고객이 매긴 등급의 지배를 받는다. 감독자 없이 ‘고객’을 활용해 노동자를 감시하고 징계한다. 노동중개인들은 노무 관리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강도 높게 노동자들을 감시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가이 스탠딩은 “의식적이고 항구적인 가시성의 상태는 무의식적인 권력 작용을 보장한다”는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을 인용하는데, 나 역시 한번 더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객과 작업자가 서로에게 평가 점수를 매긴다는 ‘반론’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고객은 낮은 등급을 받아도 금세 다른 작업자 혹은 다른 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  

플랫폼 작업자들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플랫폼에 의존해서 노동을 하고 플랫폼 업체의 근로 규약을 강요받으면서도 직무와 관련된 비용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우버 택시 기사는 자기 차량을 관리 하기 위해 돈을 들여야 하고, 자기 돈으로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과거엔 택시 운송 업체가 담당하던 비용이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할당된 것이다. 이렇게 ‘작업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도 근로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3.플랫폼 노동은 부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강력한 논리는 노동자들이 ‘유휴 자산’ ‘유휴 노동’을 활용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허구다. 아직까지는. 2014년 미국에서 이뤄진 조사긴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의 75%는 플랫폼 노동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급여도 올라가기 어렵다. 노동 시장에선 노동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대등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을 때 임금 수준이 보장된다. 플랫폼 작업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고용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어렵다.

노동이 가난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언명은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그 생명력을 다할지도 모른다.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악마의 맷돌’을 이제는 멈춰야 할때가 아닌가 싶은데.....

아침 출근길 택시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렸다. 전화를 거니 할아버지 운전 기사가 마침 사당역 인근이라고 한다. 사당역에서 서초역까지 휴대전화를 돌려주겠다며 찾아왔다. 인심좋아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1만원을 건네자 웃음기를 거두고  3만원을 달라고 요구한다. ‘우버 택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든다. 어쨌든 2만원만 드리는 걸로....

작가의 이전글 음식의 세계사 여덟번의 혁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