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장소, 레이 올든버그
'워라밸'의 시대.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면서도 일터와 삶터의 공간적 균형은 말하지 않는다. 직장과 집만을 진자처럼 주기적으로 오가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직장의 압박과 집의 권태에서 벗어날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 직장이든 집이든 10분 정도 걸어가 (직장 동료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일터와 삶터 사이 균형을 잡는 축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네 도시 개발에는 단 한 번도 이 같은 '제3의 장소'에 대한 고민과 안배가 없었던 듯 하다.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카페, 선술집, 동네 서점을 주거지가 갖춰야할 디폴트값으로 여겨본 적이 없다. 사생활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서, 효과적으로 타인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방안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주거 문화가 발전해왔다. "과거에 모범적인 도시란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는 곳이었지만, 현재의 이상적인 집은 사회적 질병으로부터 도피하는 곳"....이라는게 책의 저자, 미국의 도시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진단이다.
레이 올든버그는 '비공식적인 공공모임 장소'가 제공하는 공적인 생활이 지역 주민들간의 유대감을 높일 뿐만 아니라 계층과 연령에 따른 사회적 분절을 막는다고 본다. '제3의 장소'가 새삼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미국에선 100년전(한국에선 아마도 30년전)까지 동네마다 제3의 장소가 있었다. 'pub crawling'이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다.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의 사례로 영국의 펍, 프랑스의 카페를 소개하는데 언젠가 개정판이 나온다면 한국의 '마실'이란 개념도 추가해볼만하지 않나 싶다.
레이 올든버그의 1989년 작. 혼밥에 이어 혼술로, 음주마저 사사화(私事化)되며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서툴러지는 작금의 한국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