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지금, 사서는 안 되는 재화가 있을까?

by 윤상호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고른 책, 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중앙도서관 사진

올해 19학번으로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중앙도서관에 '구경' 삼아 들어갔다. 사실 친구들과 공강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구경도 할 겸, 그래도 대학생이 되었는데 앞으로 자주 오게 될 도서관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궁금하기도 했다.


적어도 그런 마음은 있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어디까지나 '성적'을 위해 책을 읽고, '수행평가 점수'를 위해 독후감을 적었었다. 책도 별로 안 읽어봤을뿐더러 대부분 책도 안 읽고 독후감을 쓴 경우도 많다. 그랬기에 독서의 본질적 목적을 벗어난 약아빠진 행위들에 대한 스스로의 환멸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대학교에 오면 정말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책을 읽어야 할 텐데, 문제집 외에는 책을 읽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는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는 이미 교수님들이 대학생을 위해 소위 '좋은 책'들을 뽑아 놓으셨다. 특히 '인문학'과 관련해서 말이다. 책에 대한 내공이 부족하니 '배우신 누군가'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 책들 중에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생각해 볼거리'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문학은 '감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철학은 '생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책 제목과 소제목이 내 눈을 통해 생각을 자극했다. 웬만하면 '돈'을 통해서 가치를 판단하여 가격을 매기고, 이를 돈만 있다면 구매할 수 있는 시대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니. 돈으로 살 수 없다면, 즉 매길 수 없다면 무엇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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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미국의 정치철학자이면서, 하버드에서 'Justice'를 강의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하버드에서도 줄을 서서 강의를 듣고,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수준을 넘어 학생들에게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아도 많은 기대를 하고 골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이미 소리 없는 토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장과 도덕

거래 만능주의 속에 살아가는 시대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챕터마다 끊임없이 묻고 있다. 자유와 번영의 열쇠로 불렸던 혹은 지금도 불리고 있는 '시장'. 모든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데에 최적의 수단이라고 믿었던 혹은 지금도 믿고 있는 '시장'. 그 시장이 최근 몇 년간 금융위기와 도덕적 논란이 겹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강, 교육, 공공안전, 국가보안, 사법체계, 환경보호, 스포츠, 여가활동, 임신과 출산, 그 밖의 재화에까지 시장논리가 개입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이 현실 속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시장의 한계와 역할, 우리 삶으로 들어왔을 때의 여러 논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과연 어디까지 시장논리를 개입할 수 있을까?"


이 독후감을 통해 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차근차근 전개해보고자 한다.


인센티브는 마냥 좋은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인센티브'는 마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Main) 일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돈까지 따라온 다면 당연히 동기부여도 되고,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오히려 인센티브를 도입하였을 때, 나와 같은 사람들의 통념과는 반대로 결과가 나온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두고 부모가 늦게 오는 경우,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그만큼 추가적인 노동을 하게 된다. 부모들의 지각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어린이집에서는 지각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여했다.


당연히, 나는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지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벌금'을 '요금'으로 인식한 결과였다. 벌금을 부여하지 않았을 때에는 부모들이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왔지만, 벌금을 부여하기로 한 순간부터 부모들은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어린이집 서비스를 더 이용하게 돼버린 것이다. 이 부분이 정말 섬뜩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지각하면 안 된다'라는 규범이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지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인센티브를 결합한 많은 서비스들이 탄생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면 돈을 주고, 담배를 끊으면 돈을 주고 등등등... 단기적인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깊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인센티브를 매겼을 때, 초기 목적이 '궁극적'으로 잘 될 수 있을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주객전도(主客顚倒)

물론 인센티브가 효과적이었던 사례 또한 소개하고 있다. 학력이 부진한 댈러스 소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책을 읽을 때마다 2달러씩 돈을 지급한다. 이후 실제로 독해력이 많이 상승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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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학생들이 느끼기에 그들은 '독서'를 한 것일까? 아니라면 독서를 가장한 '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애초에 학교에서 독서를 권장하는 목적이 '학력신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인센티브를 통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이니 말이다.


'주객전도'란 주인과 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ㆍ선후ㆍ완급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인센티브로 인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처럼 독서를 일종의 성적을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지급되는 돈을 일종의 노동의 '대가'라고 인식한다면, 아무리 학습효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청소년기에 확립된 독서에 대한 생각을 평생이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교육적 효과가 있었느냐 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삶과 죽음의 시장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투자상품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이른바, 생명을 담보한 도박 '말기 환금'이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환자가 남은 여생 동안 치료를 받거나 짧게나마 여생을 잘 살아보기 위해 돈이 필요할 텐데, 환자는 자신의 생명보험 증권을 투자자에게 팔고, 투자자는 보험료를 지불해주고, 사망 시 사망보험금을 투자자가 받는 시스템이다.


한 번도 이런 상품이 있다고 들어보지를 않아서 되게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들어보다 보면 양쪽에 모두 이득이 될 수 있는 상품이다. 단, 의사가 예측한 사망시점에 맞추어서 그 환자가 죽는다면 말이다. 만약 환자가 건강해져서 오래 산다면 어떨까? 그 생명보험을 사들인 투자자의 마음은 복잡 미묘할 것이다. 그렇다고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테지만, 자기 자산에 계속해서 손해를 보는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말기 환금'에 투자한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과연 그들이 '신약개발'과 같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과연 지지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죽기 바란다면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일까.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품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인가? 묻는다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에게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상품이 환자에게 심지어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여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준다든지 말이다.


나는 아직 무엇이 옳은 지, 이 상품이 과연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이 글을 쓰면서도 참으로 고민스럽다.


결국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야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솔직히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부분 또한 금액으로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 돈을 투자하면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정말 진정한 사랑이냐는 반박에 달리 대답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웬만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무엇을 사지 말아야 하는가? 어느 지점에는 시장이 개입해서는 안 되겠는가?

이 책에서는 이를 '도덕'적인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도덕적 규범'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해질 수 있는 것인가. 동성애, 성매매, 대마초 등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불법이지만 외국에서는 합법인 경우도 많다. 결국 '도덕'이라는 것은 특정 '사회'의 '공감대'라고 생각한다.


공감대는 언제든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원성을 지향하기 마련인데, 올바른 방향으로 공감대를 변화시키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터져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섞이고, 때론 철학과 종교, 과학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다면 모두에게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 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렇게 읽어보려고 한다.

책의 내용이 많다 보니 읽어놓고도 막상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책 읽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시간이 나는 순간 읽고, 다른 일이 생기면 책갈피를 넣어두고 한참 있다가 다시 읽으니 맥락을 다시 잡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챕터를 읽고 그 챕터에 해당하는 독후감을 그 자리에서 작성해놓아야겠다. 책을 읽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도 정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이를 책을 다 읽고 쓰려고 하니 막상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교에 와서 읽은 첫 번째 책이기도 하고, 지하철과 버스로 오고 가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한 책이다. 스스로에게 나름의 박수를 보내면서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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