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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니핑크 Oct 08. 2015

대만 영화, 새로운 장르로 다가오다.

80년대 대만 뉴웨이브 영화부터 현재까지

작년 이 시간, 남포동의 낡은 극장에서 <님포매니악> 두 편을 연달아 보고 있었다. 삼백 분의 러닝타임을 견딘 엉덩이가 찌그러진듯한 이 느낌도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만 겪을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3박 4일 동안 총 10편의 영화를 보았고, 22시간을 오로지 영화를 보는 데 할애했다. 스무 살 이후로 영화 감상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내어준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화 볼 시간도 없을 만큼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두세 줄의 짤막한 소개, 그저 감으로 고른 영화들을 직접 감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장소 탓이었을까, 다행히도 선택한 영화들이 중박 이상으로 재미있었고, 영화마다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올해 다시 BIFF 철이 돌아오니 그때의 느낌이 가슴 벅차게 그리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KBS에서 부산국제영화제 20년 기획으로 '아시아 영화의 힘' 대만 편을 방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꿩 대신 닭이라도,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대만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열일곱 살 때 대만이라는 나라를 영화로 처음 접했다. 당시 일본 영화에 빠져있던 나에게 대만 영화는 또다른 신선함이었고, 새로운 '장르'로 다가왔다. 내게 그런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계륜미(桂綸鎂)의 남다른 작품 선택 덕분이다. 국내에 계륜미 팬이 많다 보니 찾아볼 수 있는 대만 영화라고는 그녀의 작품뿐이었는데 그중 <남색대문>, <가장 먼 길>, <노면주차>라는 영화는 당시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남색대문>은 동성애를 다뤘고, <가장 먼 길>은 대사가 없는 영화였으며, <노면주차>는 불법주차한 차량의 주인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의 전개가 특이한 영화였다.


대만 섬의 인구는 2,300만 명, 면적은 36,000km²로 남한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연간 약 300편의 제작하는 세계 3위의 영화 수출국이었다. 80년대에는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에드워드 양(楊德昌)에 의해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가 시작되어 대만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주의적 접근의 영화들이 탄생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관찰하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영화의 한 종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환상이나 드라마를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것 역시 영화라고 알려주셨죠. " - 레온 다이(戴立忍) 감독


자객 섭은낭 (聂隐娘, 2015)


"당신의 목소리와 관찰을 통해 당신만의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독창성의 근원이죠. 독창성은 다른 시스템에서 얻는 게 아닙니다. 사물을 관찰하고 느껴야 합니다. 통찰을 얻으면 내가 본 것과 느낀 것을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그때 독창성을 얻게 되는 것이죠." - 허우 샤오시엔 감독, <자객 섭은낭> 제작발표회에서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만의 연간 영화 제작 편수는 10편 미만으로 급락하게 된다. 대만 영화에 종말이 온 것 같았던 이 시기에 당당히 꿈에 도전한 젊은 감독이 있었다. 웨이 더솅(魏德聖)은 1930년 우서사건(대만 원주민 시디그 부족의 항일 봉기)의 영화화가 목표였지만 제작비 모금에 실패하자 방법을 바꿔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하이자오 7번지 (海角七號, 2008)


<하이자오 7번지>는 원래 계획에 없던 영화였지만 단편만 찍은 감독에게 제작비를 투자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만든 영화이다. 당시 대만 영화시장 최고 흥행을 기록하며 170만 달러의 제작비로 1,8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웨이 더솅 감독의 영화가 흥행 신기록을 세운 것 외에도 2008년은 극적인 사건들이 절정을 이루던 해였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충만한 젊은 감독들의 데뷔작이 쏟아져 나오며 '대만 영화의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앞서 말한 계륜미 주연의 <가장 먼 길>과 <노면주차>가 이 시기에 나온 영화이다.)


<하이자오 7번지>의 성공은 대만 감독들에게 자극제가 되어 영화의 꿈을 다시 꾸게 했다. 그 후로 흥행수익 300만 달러를 달성한 영화들이 나왔다. 웨이 더솅 감독은 원래의 목표를 잊지 않고 <워리어스 레인보우>를 제작했다.


워리어스 레인보우 (賽德克‧巴萊, 2011)


"<하이자오 7번지>가 성공한 덕분에 <워리어스 레인보우>를 촬영할 종잣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촬영 첫날 이미 빚이 100만 달러였어요. 영화를 완성하려면 총 2,400만 달러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멈추면 빚은 300만 달러인데 300만이나 2,400만이나 못 갚는 건 마찬가지니까 어차피 갈 거면 크게 가보자'라고 생각했죠. 어느 쪽이든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당시에는 그렇게 앞만 보고 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 웨이 더솅 감독


<워리어스 레인보우> 1, 2탄의 흥행수익은 3,000만 달러를 육박하며 기록을 경신했다. 우서사건을 해당 부족의 입장에서만 그리지 않고, 관계됐던 모든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려냈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대만 역사를 주제로 다뤘으며 영화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했다. 대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들었다.


 웨이 더솅 감독, <아시아 영화의 힘 - 대만 편>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이렇게 배웠습니다. 우리는 아시아의 고아이고, 양부모가 필요하다고요. 그간 수많은 양부모를 거쳤지만 아직도 기댈 곳을 찾고 있어요. 일본이나 중국 관련 소재를 다루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죠. 우리는 자신감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친일반중이라고 비난받고,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친중반일이라고 비난받아요. 꼭 한쪽 편을 들어야 하나요? 저는 <하이자오 7번지>를 찍고 친일반중이 됐습니다. 그 다음 <워리어스 레인보우>를 찍고는 반일친중이 됐죠. <카노> 때에는 일본에 아부하는 사람까지 됐고, 중국에선 상영 금지를 당했어요. 이건 일본의 탓도 중국의 탓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 자신의 문제죠.

지금 대만이 몇 살입니까? 70살 먹은 노인이 자기가 어려서 양친을 잃은 고아라며 날 돌봐줄 양부모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한 대 때리고 싶지 않겠어요? 자기 자식들이나 고아 만들지 말고 잘 돌볼 생각을 해야지 어디서 중심을 못 잡고 어리광을 부려요?"


웨이 더솅 감독의 일침, 자국을 향한 그의 사랑이 느껴지면서 나에게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대만을 이야기할 때 중화권 국가이지만 일본의 영향의 받아 깨끗하고 질서가 있는, 그리고 따뜻한 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중국과 같은 문화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대만은 확실히 다르다. 내가 유난히 대만 사랑을 강조하는 데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만 감독들에겐 특별한 장점이 있어요. 우리가 아끼는 것들을 주제로 삼는다는 거죠. 우리 땅과 우리 사람들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관객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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