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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Sep 29. 2015

흔들림을 기록해 설렘을 남긴다

[주절주절 아프리카 감성] 진동계 마냥

우리의 트럭에서 글을 쓰다 보면 길이 너무 험하고 트럭 차체에도 그다지 흔들림을 방지하는 뭔가가 없어서 그 진동이 고스란히 글씨에 남곤 했다. 글씨는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운 진동계 마냥 나의, 너의, 우리의 흔들림을 기록했다. 그 파형에는 우리의 설렘이, 떨림이 남아있었고 그 진폭에는 우리의 피곤함과 고단함이 남아있었다. 때론 그 파형의 끝이 하얀 종이를 벗어나 날아가버릴 때도 있고, 때론 그 진폭의 방향이 애매해져 어디로 그 폭을 재야 하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라는 뜻의 비포장도로. 하지만 그냥 단순히 비포장도로라고 칭하기에는 단어의 거친 느낌이 한참 부족한 듯한 아프리카의 도로. 또 도로라기 보다는 그냥 풀이 덜 자란 땅일 뿐인 날 것의 아프리카를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가 원래 있던 덜컹덜컹의 박자 위에  한 번씩 '터어얼컼엉'이 얹힐 때면 나의 샤프는 항상 끄트머리에 달려 글씨를 끄적대던 샤프심을 뽀각 잃어버렸다. 대신 그 자리엔 흑연가루 날리는 점을 하나 찍어놓고 새로운 자리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글씨인데, 분명 글씨를 쓴다고 쓴 것일텐데 어지러운 선과 점이 남아있다. "어차피 글씨는 점과 선으로 이뤄져 있는 거야. 어쨌든 이게 최선이었다구". 뻔뻔한 과거의 나, 트럭과 함께 흔들리던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마음에 안 들게 써진 듯 글씨 위에 선을 쭉쭉 그어 지운 것인데 그 선이 제각각이니 결국 지운다고 지운 게 더 신경 쓰인다. "아니 그럼 그때 지우개를 꺼내서 지우겠니? 어쨌든 이게 최선이었다구". 뻔뻔한 과거의 나, 설렘으로 떨리던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다시 이 글씨를 찾아왔다. "이건 대체 뭐라고 쓴 거지?"하다가 기억 저편에서 그 글자를 찾아와 끼워 맞춰 볼 때면 암호문을 해독한 양 뿌듯함과 함께  "그땐 그랬지" 하고 그리움 가득한 웃음이 따라온다. 나중에 되새김질해 볼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등의 거창한 노력은 없었는데, 이리저리 흔들리던 트럭이, 그 트럭 바퀴에 채였을 돌멩이 하나가 남긴 진동이 글씨 하나하나에 남아 그리운 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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