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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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바사를 떠나는 날. 숙소도, 사람들도, 바다도, 쇼핑몰도, 밥도 다 좋았던 몸바사. 딱히 한 건 없었지만 그 '잉여유로움'이 좋아 너무 아쉬웠다.
숙소 주인 언니한테 툭툭을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흔쾌히 오케이 해줘서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야심차게 셀카봉을 꺼내들었지만 사실 나도 셀카봉을 아프리카 갈 때 처음 사본 거라 제대로 쓸 줄 몰라 버벅거렸다. 절대 가녀리지 않은 내 팔목이 왜 셀카봉 버튼을 누를 땐 한없이 여려져서 사진을 자동 블러 처리되게 찍어놓는지 모를 일이다. 언니와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 아니 가지고 놀다가 구도도 초점도 제각각인 사진이 앨범에 가득 찼다. 그나마 덜 흔들린 사진을 골라 사진 편집 어플로 편집까지ㅎㅎ 같이 했다. 프릴? 레이스 같은 걸 좋아하는 흑언니의 취향을 저격한 프레임 낙찰!
괜히 기차나 버스를 탔다가 또 하루정도 연착이 되면 이젠 정말로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어젯밤, 몸바사에서 나이로비로 돌아가는 국내선 항공을 예약했다. 언니가 불러준 툭툭을 타고 Moi Airport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많이 막혔다. 신호등이 거의 없어 항상 툭툭을 타고 신나게 달렸었는데 공항 가는 길은 화물차가 많아서 그런지 거의 서있다시피 했다.
Moi Airport. 그다지 크진 않지만 상당히 깔끔했다. 그런데ㅎㅎ 비행기 11시 40분 출발이었는데 지연돼서 1시.. 짐 부치는데 있던 공항직원이 "딜레이 되었으니 1시꺼 타시면 됩니다"라고 말해줬는데 너무 당연하고 태연하게 말해서 잘못들은 줄 알았다. 정말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와 같이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투로 이야기했다. 1시간 이상 연착은 그래도 좀 뭐랄까 어느 정도 감정을 실어서 말해줄 만한 이슈 아닌가..? ㅎㅎ 그래도 그 정도 연착은 일정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나 역시도 태연한 척 여유롭게 "오케이"하고 공항 로비로 향했다.
공항 내 카페에서 African beef 도시락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맛있게 먹고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지연된 비행기 승객들은 카페에 와서 스낵 받아가라고 방송이 나왔다. 공짜로 프링글스와 콜라를 받았다. 지난번 몸바사 기차도 18시간 연착돼서 두 끼를 공짜로 주더니 이번엔 비행기가^^ 무슨 이유로 지연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항공사나 기차회사 입장에서도 조금 서두르는 게 예상치 못하게 나가게 되는 '승객을 먹이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더 좋지 않을까?라고 프링글스를 우적우적 먹으며 생각했다.
구름 위에 솟은 저 산은 무슨 산일까 킬리만자로산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비행기는 어느 새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지난번처럼 택시를 타려다가 현지인이 타는 공항버스를 한번 타봐야겠다 싶어서 물어물어 정류장을 찾아가 공항버스를 탔다. 버스비는 탈 때 내지 않고 중간에 보조기사아저씨가 승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걷는다. 택시를 타면 1800~2000실링인데 공항버스는 1인당 70실링! 그렇지만 짐이 너무 많아서 한 자리를 더 차지했기 때문에 2인 자리값을 냈다. 사람들은 계속 꾸역꾸역 타고 짐을 좀 치워서 자리를 마련해 주려해도 짐이 너무 커 아주 난감했는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나니 좀 떳떳해진 느낌. 그런데 정말 중간중간 정류장마다 끝없이 손님을 태웠다. 낡은 겉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튼튼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버스, 그리고 그 타이어에게 박수를..
버스 안은 정말 더웠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에어컨은 당연히 없는 버스 안에서 36.5도의 사람들이 끼여있으니 안 더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냄새. 코가 적응될 만하면, 새로운 정류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냄새를 담아와 버스 안 공기에 더했다. 내 코의 적응력은 무력화되었다.
나는 좀 일찍 탄 편이어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문을 열면 더위와 냄새가 어느 정도 해결될 줄 알았다. 창문을 여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안 좋은 듯한 케냐의 공기를 강제로 영접했다. 아 이것이 바로 air pollution이라는 개념 자체구나. 케냐에 온 이래로 신호등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잘 지키지 않았다. 그런 도로에 온갖 자가용, 트럭, 버스, 오토바이와 자전거, 사람, 가축까지 엉켜있었다. 어떻게든 각자 움직이기는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대부분이 낡은 차, 오토바이인 탓에 정말 새까만 매연이 펑펑 나오는데 도로가 막혀 공회전을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심호흡이라도 조금 적극적으로 하려 하면 목이 아파왔다. 이런 매캐한 공기 속에서도, 이런 복잡한 도로 옆에서도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가축들은 풀을 뜯으며 잘 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숙소를 찾아갔다. 분명 850m 정도랬는데 길이 꼬불꼬불해서 그런지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았다. 낮이었고 길가에 경찰들도 많았지만 나는 이때가 몸바사 밤거리를 걸을 때보다 훨씬 무서웠다.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째려보고 훑어보고 말을 걸었다. 물론 그들은 그냥 동양 여자애가 외국인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거리를 걷고 있으니 신기해서 쳐다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주관적인 두려움이 평범한 상황에 너무 많이 뿌려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무서웠다.
간신히 숙소를 찾아들어가 좀 쉬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나이로비 거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조그만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좀 샀는데 대부분의 음료수가 냉장고가 아닌 상온에 비치되어 있어 미지근했다. 옷가게나 액세서리 가게 등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계속 따라왔다.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가게 앞에서 서성대다가 내가 나오면 다시 쫓아오고. 무서움에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서 숙소로 도망쳤는데 숙소까지 따라 들어오려고 했다. 숙소 안전요원에게 저 사람 못 들어오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겨우 벗어났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이래로 "무섭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무서웠던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다. 이후로는 내가 적응이 된 건지 사람들 시선을 느껴도 눈인사를 해주며 즐겁게 돌아다녔다. ㅎㅎㅎ
원래는 현지 식당을 찾아서 저녁을 먹으려 했지만 아까 잠깐 둘러봤을 때 적당한 식당도 없는 것 같았고 어두워져서 나가는 건 더 무서울 것 같아 숙소에 있었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킨 메뉴들 다 맛있었는데 T-bone steak만.. 또 나의 나이프, 나의 포크, 나의 턱뼈에게 고난을 주었다. 아프리카의 고기는 복불복인가 보다. 잘 요리하면 정말 부드럽고 맛있지만.. 이하 생략..
내일 드디어 3주 간의 트럭킹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Kenya comfort Hotel로 아침 일찍 가서 미리 짐을 풀어야지! 신난다 신난다
이제 메인 코스, 트럭킹 시작이라구!